◎망각 50년 살려낸 “첨단취재”/프놈펜서울진동 3각 추적/마을스케치·옛 사진 「캄」으로 노트북 전송/기억의 편린 끈질긴 대조… “드디어 찾았다”일제에 의해 군대위안부로 끌려간 캄보디아 거주 「훈」할머니가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찾게된데는 한국일보 취재진의 뛰어난 기동성과 첨단기술을 일등공신으로 꼽을 수 있다.
본보는 이 사건을 14일자에 처음 특종 보도한 뒤 즉시 프놈펜―서울―진동, 프놈펜―서울―부산을 잇는 두 축의 삼각취재망을 가동,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할머니의 옛 기억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진동 마을지도, 진동마을 스케치그림이 프놈펜의 훈 할머니에게 팩스로 전달됐다. 반세기 이상의 비극적인 과거속에 깊숙이 파묻혀 버린 할머니의 희미한 기억을 복원하는데는 컴퓨터를 이용한 각종 화상 이미지의 송수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훈 할머니의 혈육을 찾아내기 위해 본보가 최초로 사용한 방법은 할머니가 고향으로 기억하고 있던 진동마을에 대한 5백분의 1규모의 상세한 지도를 그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학시절부터 이 지역 지리를 환히 꿰뚫고 있던 방민준 전국부장이 직접 그린 이 지도에는 할머니가 다녔던 진동공립보통학교와 이 학교 운동장의 명물인 큰 나무, 바닷가 송림숲, 방파제와 갈대밭, 진동마을을 가로지르는 동촌·서촌 냇가, 옛날부터 물이 시원하기로 소문난 「참샘사」 등이 꼼꼼히 그려져 있다. 이 절은 훈 할머니가 소녀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다녔다고 증언한 추억속의 사찰.
서울에서 팩스로 들어온 지도와 스케치를 찬찬히 훑어본 할머니는 마침내 흥분을 감추지 못한채 『내 고향이 맞다』고 소리쳤다. 취재진은 그러나 고향에 대한 할머니의 기억을 1백% 되살려내기 위해 진동마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스케치를 할머니 앞으로 속속 전달했다.
할머니와 함께 동촌 냇가에서 멱을 감고, 썰매를 탔던 유년·청소년 시절의 옛 친구사진들도 큰 힘이 됐다. 진동에서는 할머니와 소학교를 함께 다닌 김진우(75) 할아버지, 조태선(75) 할머니 등이 어렸을 때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입수, 캄보디아로 보냈다. 또 부산에서는 여동생 남선(72)씨와 남동생 남조(62)씨 등 가족들로부터 입수한 흑백사진들을 서울을 통해 프놈펜에 있는 우리 취재기자의 노트북으로 즉시 전송했다. 현지에 특파된 본보 기자들은 이른 새벽 노트북을 손에 든채 할머니가 묵고있던 숙소로 달려갔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사진을 보며 감격해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또다시 카메라에 찍혀 서울본사의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났다.
국제부와 전국부 데스크에는 기업의 연말 회계정산처럼 대차대조표가 만들어져 갔다. 부산과 마산에서 올라오는 할머니 가족에 대한 정보와 프놈펜의 할머니가 기억의 저편에서 어렵사리 끄집어낸 파편들을 비교·대조하는 작업이었다. 프놈펜의 취재진은 부분적인 기억상실 증세를 보이는 할머니에게 온갖 손짓발짓을 해가며 잃어버린 과거찾기를 계속해 나갔다. 진동과 부산의 취재반도 「사생활」을 이유로 증언을 머뭇거리던 가족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두 지역 사람들의 증언에서 드러난 의문점과 상이점은 즉시 리스트로 만들어져 확인작업을 벌였다. 하루가 다르게 대차대조표는 충실해졌고 좌항과 우항이 완전히 맞아떨어졌다는 확신이 선 17일 하오 편집국 여기저기서는 『드디어 찾았다』는 함성이 터져나왔다.<프놈펜·서울·부산·진동=이희정·박진용·박상준·이동렬 기자>프놈펜·서울·부산·진동=이희정·박진용·박상준·이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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