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안부가 4, 5명 있었던 당당하고 멋진 시설이었다. 하나코는 그중 가장 젊었다. 당시 일본군은 청결하고 안전한 위안소를 만들어 병사들을 주 2, 3회 놀게 했다. 나는 너무 늙어 귀국을 도와줄 힘이 없다』『반인류 행위자인 히틀러를 광고에 등장시킨 것은 아직도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에게 불필요한 슬픔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앞의 것은 일본군 군대위안부로 끌려가 50여년동안 캄보디아에서 살다 최근 본지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진 「훈」할머니의 전남편 다다쿠마 쓰토무(지웅력)씨의 말이고, 뒤의 것은 얼마전 주한 독일대사관이 국내 일부 제과업체가 껌광고에 히틀러를 등장시키자 이의 자제를 요청하면서 해당 업체에 보낸 서한이다.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중 「몹쓸 일」을 참으로 많이 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정도였고, 그래서 그들의 패전은 역사의 필연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두 나라는 전후처리에 있어 너무나 달랐다. 일본은 아직도 「군대위안부」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90년대초 만난 일본 게이오(경응)대 학생들은 이 단어를 생전 처음 듣는다고 했다. 설립자인 후쿠자와(복택)의 초상화가 1만엔짜리 지폐에 들어 있는 이 대학은 일본 대학중 가장 국제화·세계화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이에 비해 독일은 총리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의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지금도 피해자들이 나타나면 국가차원에서 보상해 주고 있다.
일본군 장교출신인 다다쿠마씨의 발언과 주한 독일대사관의 서한은 이같은 양국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줘, 숙명적으로 가깝게 지낼 수 밖에 없는 일본과의 관계를 위해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나를 생각하게 한다.
16일자 본지 1면에 실린 앞니가 5개뿐인 「훈」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있지만, 참다운 용서와 이해는 「합당한 절차」를 필요로 하고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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