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힌 실타래 풀기위해 지자체들이 해결 나섰다/자매결연·다양한 교류로 상호이해를 시작/그러나 연말대선으로 말짱 도루묵되지 않을까 걱정도 크다정치권이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있는 가운데 실타래처럼 얽힌 지역감정을 풀어 보려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89년 자매결연을 맺은 이래 다양한 교류행사를 갖고 있는 대구시 달성구와 광주시 북구의 노력은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잘 어우러진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두 지자체는 올들어서도 식목일 기념 식목행사 주민 45명 교환방문(4월5일), 대구 두류축제(4월26일) 및 광주태봉대축제(5월10일) 어머니 배구단 교환 방문 등을 실시하고 지자체 인사 교류도 행했다.
인사 교류는 견학 차원의 상호방문 수준을 넘어 두 구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을 매회 5명씩 선발, 교환근무토록 해 상대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양측은 10월 장애인 체육대회를 갖기로 하는 등 교류를 더욱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황대현(60) 대구 달서 구청장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밑바닥 인심부터 바꿔 나가면 언젠가는 지역감정의 망령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며 『체육대회에 나와 함께 뛰고 구르는 모습에서 누가 전라도, 경상도 지역색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전남 나주시와 대구시 간의 영호남지역 특산과수 교환식재 행사(3월28일), 대구예총과 나주문화원이 주관한 영호남 한마음 음악회(5월3일) 등 영호남간의 교류 움직임이 퍼져 나가고 있다.
지자체의 활발한 움직임에 비해 시민운동 차원의 노력은 아직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전국적인 규모의 움직임으로 눈에 띄는 것은 공선협의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후보 낙선 운동」. 공선협은 각 지부에서 상대지역 후보 초청행사를 갖기로 하는 등 지역간 교류 프로그램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공선협 정책부장 김의익(32)씨는 시민운동이 활발하지 못한 데 대해 『지역 시민운동단체는 그 지역의 경제 논리나 여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라며 『지역감정 문제를 잘못 건드릴 경우 오히려 그것을 기정사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극적인 대응을 막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광주의 정모(43·자영업)씨. 『나랏님도 못하는 일을 먼저 나서서 하니 힘껏 돕고 성원해야지요. 하지만 연말 대선 바람 한번 불면 말짱 도루묵이 되지 않겠어요?』
그의 말대로 깊디 깊은 지역간의 골을 메우려는 움직임을 바라보는 지역주민들의 마음은 착찹하기만 하다. 그는 『지역감정을 자극해서 덕을 보려는 정치인들도 문제지만 마구 휩쓸려 들어가는 일반 유권자들이 더 문제』라고 덧붙였다.
보통사람인 그의 말속에는 좀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지역감정 문제의 원인과 처방이 다 들어 있는 듯했다.<황동일 기자>황동일>
◎영여호남/울산에서 광주로 시집온 김영희씨친정에 전라도 사위가 4명·따뜻한 인정 이젠 이곳이 고향/담양 떠나 대구서 32년째 한방호씨출신지역 차별 수모 당한적 없어·보은차원 화합에 적극 나설터
『얼마전에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고향 친구와 연락이 닿았어요. 그런데 수다 끝에 「거기 안 무섭냐, 나는 무서워서 놀러도 못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바로 지역감정이구나 싶은 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7년전 친구 소개로 광주 사람인 남편을 만나 연애 끝에 경남 울산에서 광주로 시집와 살고 있는 김영희(37·광주시 송정동)씨가 털어 놓는 경험담이다.
그러나 그런 지레짐작과는 달리 연애시절 남편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 특별히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친정에서도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2남7녀의 딸부잣집에 전라도 사위가 4명이다. 둘째 언니도 전남 광양에서 살고 있다.
『경상도 사람하고 전라도 사람이 만나면 잘 산다는 말도 있어요. 남편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에서 따뜻하게 대해 줘 아무런 불편없이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향보다 광주가 더 고향같을 정돕니다』 김씨의 말투에는 남도 사투리 억양이 배어 있었다.
고향인 전남 담양을 떠나 대구에서 32년째 살고 있는 한방호(58·신동아화재보험 성광대리점 대표)씨. 친지 소개로 대구로 와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사과 중간 도매업이 실패하고 『돈을 벌어 금의환향해야지 하는 마음에 눌러 앉은 게 어언 32년』이라며 웃는다. 그간 달성공원, 달성군청 등에서 공무원 생활도 해 보았지만 출신 지역때문에 부당한 대접을 받거나 수모를 당한 적은 없었다. 다만 일을 잘못하면 전라도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말을 들을까 봐 늘 조심하긴 했다. 『타지에 나와 사는 사람이면 다 그렇게 마련 아니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보험 대리점일로 눈코 뜰 새 없지만 대구 호남향우회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는 것도 『호남 출신들부터 먼저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서』이다. 애초에 친목계 수준에서 출발한 것이 정회원만 3,000명이 넘는 큰 조직으로 성장했다. 아직은 체육대회, 고향방문단, 전라도 농산물 소개 등의 활동에 그치고 있지만 영·호남 화합에 기여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대구시에서도 시민운동장 한켠에 무료로 향우회 사무실을 내주는 등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구에 와서 일가를 이루고 자식 결혼까지 시켰으니 이제 은혜를 갚아야지요. 지역감정이라는 게 말 그대로 정서적인 문제라 거창한 정책보다는 민간 차원의 작은 교류가 훨씬 더 값지다는 생각입니다. 향우회가 그런 쪽으로 작은 보탬이라도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대구와 광주는 88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남짓이면 도달하는 거리. 대구의 파란 하늘빛은 막 여름에 들어서고 있는 광주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30도를 오르내리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황동일 기자>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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