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6월17일 워싱턴시 포토맥 강변에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의 민주당 선거사무실에 5명의 「강도」가 침입한 사건으로 인해 2년뒤인 74년 8월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 정치사의 최대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는 세칭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25주년을 맞아 미국 언론은 한창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 사건은 미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약화시키면서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의 냉소주의와 불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닉슨 대통령의 측근과 전직 중앙정보국(CIA)요원 등으로 구성된 일단의 사람들이 당시 워터게이트 호텔에 침입, 서류를 사진 촬영하고 전화에 도청장치를 해놓은 뒤 경찰에게 잡혔으나 자칫 강도사건으로 처리될 뻔 했다. 하지만 후일 퓰리처상을 수상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의 특종보도로 인해 이 사건이 정치적 음모라는 점이 드러났다. 상원 워터게이트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의 수사결과 백악관이 사건의 배후를 은폐하려고 시도했고 닉슨 대통령도 이에 가담, 국민을 속인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탄핵을 피해 스스로 하야했고 당시 법무장관이던 존 미첼을 비롯한 20여명의 측근이 쇠고랑을 차고 재판정에 서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됐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해 우드워드 기자 등에게 제보를 해준 닉슨 행정부내의 고위인사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프 스롯」(Deep Throat)이라는 별명으로 남아있을 뿐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당시 취재기자 및 편집데스크 등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알고 있으나 이들은 『죽을 때까지 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당사자와의 약속에 따라 아직 함구하고 있다.<워싱턴=신재민 특파원>워싱턴=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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