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반세기 동안 캄보디아에서 모진 목숨을 이어온 「훈할머니」(73)의 한맺힌 일생은 우리의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한다. 훈할머니는 남이 아닌 바로 우리의 할머니가 아닌가. 한국일보의 특종보도(14일자 1, 31면)에 이은 속보를 읽으며 연이어 분노가 치솟았다. 첫 분노는 이민족에 의해 사지로 내몰린 수많은 동포의 생사를 잊고 지낸 우리 정부와 국민을 향한 것이었다. 당연히 나 자신도 분노의 대상에 포함된다.뒤이은 분노는 한국일보 도쿄(동경)주재 김철훈 특파원의 인터뷰기사(16일자 3면)에서 비롯됐다. 일본의 패망전 한동안 훈할머니와 동거하면서 딸까지 낳은 다다쿠마 쓰토무(지웅력·76)씨. 현재 아태국회의원연합 일본의원단 사무국장인 그는 인터뷰에서 딸은 커녕 동거관계까지 철저히 부인했다. 오히려 『당시 위안소는 헌병에 의해 철저히 관리됐기 때문에 (영외생활은) 불가능했다…』 『한국인위안부가 4∼5명 있었던 당당하고 멋진 시설이었다… 일본군은 청결하고 안전한 위안소를 만들어 병사들을 주 2∼3회 놀게 했다』는 등 패륜적 발언으로 일관했다. 위안소가 멋진 시설이었고 안전했다니. 최소한의 양심마저 외면한 그의 말에서 한반도강점에 대한 일본정부와 국민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나치의 「홀로코스트(Holocaust·유태인대학살)」를 결코 잊지 못한다. 하지만 용서한다. 왜, 독일은 과거의 잘못을 진정 참회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이스라엘 외무부초청으로 예루살렘 방문 당시 들은 유태인의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Forgive, but Don’t Forget)」는 말의 의미가 더욱 새롭다. 그러나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사죄 대신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다. 「일본의 한반도지배는 한국에 도움도 됐다」. 툭하면 튀어 나오는 일본각료나 식자층의 망발이다. 가깝고도 먼 이웃은 한일관계를 상징한다. 진정 가까운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누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가. 답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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