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마음자세 바꿔야 한다”/“정치·경제·사회 위기 남탓 돌려선 해결안돼/가족대화 늘리고 일등주의 없애야 앞날 희망”70∼80년대 진보적인 목회활동과 민주화·인권운동에 힘써온 김성수 대한성공회주교는 현재의 국난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 한명 한명이 자신부터 개혁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치인과 종교인이 자신보다는 남을, 지금보다는 후손을 생각하는 자세를 가질 때 21세기 통일한국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김주교는 그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자기부터 모범보이기, 가족간의 대화 시간갖기, 일등주의 타파하기 등을 제안했다.<편집자 주>편집자>
―95년 대한성공회 관구장직을 퇴임하시기 전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은 특히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당연한 정서라고 생각한다』며 주위의 중임제안을 물리치셨는데요….
『그동안 정치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자리에 연연해 헌법까지 바꾸는 것을 보면서 종교인으로 부끄러움을 느껴왔습니다.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기본이자 사회의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면 반드시 어려운 일이 생기고,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일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사람마다 생각과 건강은 다른 것이고 각자 알아서 「물러날 때」를 선택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3김은 진작에 후계자가 될 「제2의 3김」을 육성했어야 마음놓고 물러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번 대선을 통해 탄생할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겠습니까.
『과거에도 부끄러움이 없었고 앞으로도 부끄러움이 없을 사람입니다. 거짓말을 안하는 사람, 어려운 사람 편에 서서 늘 같이 있어줄 수 있는 사람, 통일한국에서도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노벨평화상과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지요. 또 눈물과 정이 많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소외되고 인권이 유린된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들을 껴안고, 이들과 흉금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올해 대선은 무엇보다 「돈 안드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주교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각종 선거가 돈으로 얼룩지게 된 것은 법이 형평성과 엄정성을 잃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건국이래 당선자가 돈을 뿌렸다고 해서 감옥에 가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까. 처벌받은 기억도 없고 처벌을 받아도 엄벌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또 다시 돈봉투가 난무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부터라도 각자가 모범을 보입시다. 다음 사람과 다음 선거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대선에 임합시다. 비밀은 영원히 지켜질 수 없습니다. 눈앞의 손해가 있더라도 후손을 위해 모범을 보이도록 합시다. 특히 전체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종교인과 신앙인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솔선해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자유당시절 유행한 「받을 것은 다 받고 찍지만 말자」라는 말은 말이 안됩니다. 신고해야 합니다. 올바른 말을 해야 합니다. 주님도 「내가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각 분야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특히 경제가 가장 어렵다는 얘기를 합니다.
『최근 일본 엔화가 고평가 추세로 돌아서니까 한국경제에 청신호가 켜졌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일본사람이 재채기를 하면 한국사람이 감기에 걸려야 합니까. 우리 기업가들은 언제까지 일본의 눈치를 봐야 합니까. 투자해서 일본을 따라 잡아야 합니다. 튼튼한 경제의 기초를 만들어 도약을 해야 합니다. 한보사태가 한 기업만이 아닌, 온 나라의 기반까지도 흔들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 기초가 약해서 그런 것입니다. 물가와 과소비도 문제입니다. 집사람은 슈퍼마켓에서 1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합니다. 나 정도로 사는 사람도 이런 말을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어느 정도나 되겠습니까.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디서 돈이 났는지 그렇게나 돈을 써대는 졸부도, 해외만 나갔다 하면 물건을 사들이는 국회의원도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이들이 이러니까 일반 국민도 아이들에게 값비싼 운동화를 사주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 고등학생들이 신용카드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게 말이 됩니까』
―노사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요.
『회사가 망하면 사장도 망해야지 어떻게 사장은 잘 살 수가 있습니까. 회사 이익 중 투자분을 뺀 나머지는 모두 노동자의 급여로 지급해야 합니다. 요사이 노동자 처우가 개선됐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부 대기업에만 국한된 것이지 중소기업이나 미니기업도 그렇습니까. 물론 노사갈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요. 20여년전 영국유학 당시 한 인쇄공장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신부가 그 회사의 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양쪽에서 한결같이 「왜 그쪽 편만 드느냐」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우선 노·사 양쪽의 신앙인부터 분발해봅시다. 노사관계를 원만히 풀어가기 위해 신앙인부터 노력한다면 결국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 기회에 정치권의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지요
『한보사태와 「전·노 사면」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먼저 한보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양심선언을 해야 합니다. 장본인뿐만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동조자들도 후예를 위해 양심적인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은 이를 용서해줘야 합니다. 기독교 기본윤리는 용서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도 결국은 사면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단 이들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많은 국민이 이들의 사면에 호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등 국제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무한경쟁 시대속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기업가나 정치인부터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선진국은 어떻게 해서 현재의 위치에 올라섰는지, 전후 일본은 어떻게 해서 부흥하게 됐는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국민에게 제시해줘야 합니다. 말로는 「국제화」 「세계화」하는데 저부터도 무엇이 국제화이고, 무엇이 세계화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역역조는 왜 일어났는지, 우리나라 자동차 한 대를 미국에 팔면 도대체 우리에게 얼마나 돈이 남는지, 이런 것들을 신문과 TV를 통해 국민에게 친절히 알려야 합니다』
―최근 한총련 사태에 많은 국민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서울교구장으로 일할 때인 87년 6·10민주화항쟁 당시 한 집회가 바로 서울성공회대성당에서 열렸습니다. 제 주위에 좋은 동역자들이 일하고 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당시 시민운동, 특히 학생운동에는 순수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한총련 사태를 보면 우선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일꾼들이 그렇게 실망스런 일을 저질렀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6·10때도 성당 안에서 프락치를 잡아 설득한 끝에 양심선언을 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한총련이 프락치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그랬을까 이해도 갑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학생운동이 나가면, 그래서 지금까지 그나마 관심이라도 보여줬던 사람들마저 떠나가면 과연 이 땅에 학생운동이 가능할까 의문스럽습니다. 향후 학생운동은 이지적이고 사랑이 있는 운동이 돼야 합니다. 부랑아나 달동네 사람을 도와주는 그런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민 각자가 오늘부터라도 당장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선 가족과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가족이 융화해야 사회와 국가도 융성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국가위기는 가출소녀 교화에만 힘쓰는 경찰관이 정작 자신의 딸이 가출한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김현철사건도 결국 부자간의 대화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봅니다. 청소년문제도 그렇습니다. 청소년의 땅에 떨어진 도덕성도 기성세대가 뭔가를 보여주고 말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 대학내에서도 예의가 없는 이 모든 것들이 다 가족간의 대화부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국민 각자가 「나는 과거에 무엇을 했고 앞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나를 빼놓은 옆의 사람들로 인해 일이 이렇게 잘못됐다」는 식이어서는 안됩니다. 자신부터 개혁하려는 마음가짐, 버스를 탈 때 자신부터 먼저 양보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마음가짐을 올바로 갖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힘도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교육도 여러 면에서 왜곡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뒤틀린 교육을 바로 잡기 위해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부모세대는 과거 자신들의 배우지 못한 한이 맺혀 자식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습니다. 이 보상심리가 지금의 그 엄청난 교육열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대학에서 교수에게 예의를 지키는 학생이 과연 얼마나 되고, 어른을 마음속에서부터 존경하는 학생은 또 얼마나 됩니까. 도대체 나라를 지키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할 젊은 사병들이 왜 삐삐가 필요합니까. 제대로 된 교육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일등주의」를 깨뜨려야 합니다. 예전 성베드로학교에서 달리기 경기를 할 때면 앞서 달리던 몇몇 학생은 늘 서로에게 「먼저 가라」고 외쳤습니다. 참으로 보기에도 훈훈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정신지체아동마저 서로 1등을 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뜁니다. 서글플 따름입니다』
―어떻게 이 일등주의를 깨뜨릴 수 있을까요.
『다시 성베드로학교의 예를 들겠습니다. 성베드로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면 많은 아동이 메달을 받습니다. 달리기 시합의 경우 100명 중 1∼3등에게만 메달을 주는게 아니라 조별 1∼3등에게까지 메달을 주는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회가 서울대, 연·고대에만 메달을 줄게 아니라 지방대학들에게도 많은 메달을 주는 것입니다. 정 안된다면 최소한 「메달을 받을 수 있다」는 기회만이라도 줍시다. 이렇게 해서 일등주의가 사라지면 입시위주의 교육도 자연히 사라질 것입니다』<인터뷰=김관명 기자>인터뷰=김관명>
□약력
▲1930년 경기 강화 출생
▲50년 배재중 졸업
▲57년 단국대 정치학과 졸업
▲61년 연세대 신학과 수료
▲64년 성공회 성 미가엘 신학원 졸업
▲73년 영국 셀리오크 신학대 수료
▲73∼84년 성 베드로학교 교장
▲78∼8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
▲84∼95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93∼95년 대한성공회 초대 관구장
▲95년∼현재 성 베드로학교 명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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