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고립충격에 망각상태/전문가들 “마음의 짐 덜어줘야”아무리 반세기 넘게 단절됐다 해도 성인이 다 될때까지 쓰던 모국어를 그토록 철저하게 잊어 버릴 수 있을까. 더구나 자신과 부모의 이름까지 망각할 수 있을까.
「훈」할머니의 경우는 정신대의 고통스런 경험, 캄보디아내전에서 아들을 잃은 충격, 모국으로부터의 완벽한 고립 등이 복합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에다 심리적 요인이 크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의대 조두영 교수는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잊으려는 노력과 치열한 생존노력 등이 모든 기억을 깊은 곳에 묻게 한 것 같다』며 『그러는 것이 마음의 평정을 얻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고경봉 교수도 『고통스런 상처를 잊기 위한 자기방어노력이 무의식적으로 「자기망각」으로 연결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훈」할머니의 기억과 모국어능력은 회복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낙관적이다. 17여년간 익힌 언어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기억 깊은 곳에 묻힌 「망각」상태일 뿐이므로 충분히 「상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향을 느끼게 하는 사진이나 한복, 노랫가락 등을 통한 「연상치료」와 따뜻한 관심에다 할머니의 「한」을 풀어주는 심리치료가 병행돼야 한다.
고교수는 『「훈」할머니의 깊은 상처가 개인 잘못때문이 아니라 상황적으로 불가피했던 것임을 인식시켜 마음의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김동국 기자>김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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