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농장은 통일 완충지대”/러 토지+남 자본+북 인력 정치이해 넘는 3각영농 남북주민엔 화합의 장/경제발전 노하우 러시아 전수는 새마을의 세계화 계기남북간에 거대한 영농 버퍼존(BUFFER ZONE·완충지역)이 조성되고 있다.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회장 조해녕)는 지난 3월28일 연해주의 호롤군 당국과 농지 1만2,500㏊(3,780만평)를 50년간 임차키로 계약하고 한·러 합작 농업에 착수했다. 양측은 벌목공 등 북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남·북·러시아간 3각농업도 계획하고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조해녕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은 『연해주농장이 남북한간 정치적 이해를 떠나 경제적 협력을 진전시킬 수 있는 제3의 지대로 제시된 것』이라고 이 사업의 의의를 설명했다. 조회장을 만나 연해주 농장사업에 대해 들어본다.
□대담=김병찬 정치부 기자
―사업 목적과 배경은.
『새마을운동의 세계적 적용과 통일 대비, 두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새마을운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는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만 외국에서는 경제발전의 견인차로 평가, 그 정신과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요청이 많습니다. 또 연해주 일대의 북한 벌목공 1만2,000여명과 유휴인력을 활용하면 그 순간부터 수확물을 북한에 분배해 북한에 대한 식량제공기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토지와 우리의 자본·기술, 북한의 노동력이 공평하게 결합하는 것이니까 북한당국도 체면 깎일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올해는 러시아의 한국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연해주 농장은 이들 카레이스키와 남북한 주민들의 재회, 재화합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한다는 구체적 의미는.
『우선은 대북 식량지원입니다. 지금 대한적십자사의 대북 구호물자가 대개 중국산 곡물로 충당되고 있는데 연해주 농장의 영농이 본격화하면 이곳 수확물을 한적에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당국이 어떻게 할 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탈북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대거 남한으로 귀순을 시도한다면 우리 내부에서건, 남북관계에서건 혼란이 초래될 것이 분명합니다. 즉각 충격을 덜어줄 완충지대가 필요한 것이죠. 연해주 농장은 남북한 양측이 대량탈북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상대적으로 한숨을 돌리면서 사태를 관리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연해주농장은 남북한·러시아의 공영을 위한 것입니다. 북한은 산지를 개간하다가 치산치수에 실패했는데 그 방면에 우리는 전문가들입니다. 벌목공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북한과의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우리는 북한의 치산치수 사업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북한 노동력 활용 문제는 어느 단계까지 와 있습니까.(북한은 이미 황장엽 김덕홍씨를 통해 러시아측과 인력제공에 관한 의향서를 교환한 상태였는데 두 사람의 망명사건으로 차질이 빚어졌다.)
『이 사업은 우리와 호롤군 농업국장·농장장이 계약하고, 러시아측이 다시 북한과 계약하는 3각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북한으로서도 크게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두 사람의 망명사건으로)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벌목공들은 계속 상주하고 있고, 특히 이들은 이미 북한주민들과 상당히 이질화해 있어 북한에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해 보입니다. 벌목공들은 영농기에는 벌목을 안하기 때문에 북측도 노동력 활용 차원에서 3각 농업에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이 사업이 철저하게 순수 민간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고 정부도 간여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절차상의 측면 지원만 할 뿐입니다』
―3일부터 7일까지 현지시찰을 다녀왔는데 현지 사정은.
『반듯하게 구획정리된 농지 1만2,500㏊가 구릉 하나 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주변의 청정호수인 항카호에 유입되는 하천 지류들이 많아 물 사정도 좋습니다. 이곳의 토질이 좋다는 것은 토질이 같은 항카호 반대편 중국지역의 ㏊당 쌀 생산량이 7, 8톤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연해주 농장지역은 농민들의 의욕 저하로 ㏊당 1톤 가량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산의욕 고취는 우리의 검증된 주특기니까 ㏊당 5, 6톤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쉽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계약내용과 투자 규모는.
『땅은 무상으로 임차했습니다. 수확물 분배 등 세부사항은 앞으로 계속 협의해야 합니다. 올해 투자비는 영농비와 시설보수비 등으로 10억원 가량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시설비가 떨어지니까 투자액은 낮아질 것입니다. 많지 않은 액수입니다. 거평이 자금을 제공하기로 돼 있습니다』
―현재 활동상황과 계획은.
『기존의 러시아 주민 2,000여명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비료와 농약 구입비로 1만달러를 제공했고 우리는 800㏊를 대상으로 쌀을 시험재배하고 있습니다. 7월부터는 전국의 농과대학생 35명이 공공시설 보수 등 기초환경 정비사업을 펼치고 가톨릭측에서 상주 간호원을 파견할 예정입니다. 내년에는 새마을회관이 들어섭니다. 2, 3년 안으로 러시아 농민들에게 영농기술을 전수하고 벌목공이나 한인들까지 활용해서 농사가 본궤도에 오르면 오히려 생산물의 공급이 문제가 됩니다. 러시아인들은 쌀을 안먹고 국내로 쌀을 반입할 수도 없어서 내년부터는 콩 밀 옥수수 등을 재배할 계획입니다. 국내 곡물 자급률은 27% 밖에 안돼 미국 캐나다 등에서 많은 잡곡류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연해주농장에서 잡곡들을 생산하면 수송거리나 가격으로 보아 경쟁력이 충분할 겁니다. 슈퍼옥수수를 개발한 김순권 박사와 협조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위험부담도 많을텐데요.
『지금 러시아의 법·제도가 완비돼 있지 않아 나중에 어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잠재적 불안감은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세금이나 증산분 처리권, 치안상태 등에 대한 중앙정부의 제도적 보장을 받을 수 없다고 충고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리스크 없는 사업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연해주와 중앙정부의 입법 관계자 등을 서울로 초청해 새마을운동을 적극 소개할 계획입니다』
―현지 반응은.
『연해주 당국은 기대가 큽니다. 지난달에는 현지 언론과 블라디보스토크 뉴스지가 이 사업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현재 연해주에는 우리와 일본·중국의 진출 경쟁이 불붙은 상태인데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 중국은 국경분쟁의 역사가 있어서 각각 정서적으로 장애가 많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원래 국제통인 이병화 국제농업개발원장이 개인적으로 추진하면서 사업주체를 물색해왔는데 새마을운동의 방향전환 필요성을 절감하던 우리측 요구와 맞아 떨어져 뛰어들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그동안 빈곤탈출에 집착해 도약의 계기를 찾지 못했는데 이제 통일대비, 세계화, 복지추구·환경보호 쪽으로 활동방향을 정립하고 있습니다』
□약력
▲1943년 경북 경산 출생 ▲65년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졸업 ▲69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71년 제10회 행정고시 합격, 경북도 새마을개발계장 ▲79년 경북 영양군수 ▲84년 내무부 행정과장 ▲85년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 교수부장 ▲88년 경북 창원시장 ▲90년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 ▲92년 내무부 지방행정국장 ▲93년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93년 대구광역시장 ▲95년 한국건설재난안전연구원장 ▲96년 총무처장관 ▲97년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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