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경제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만의 의견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한다는 사람들의 판단이 또한 그러하다. 부도 위기에 직면했거나 부도를 막기 어려워 견디다 못해 쓰러지는 중소기업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는 이 현실을 아무도 외면할 수 없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 근근히 먹고 사는 서민대중도 이젠 참다 못해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않은가, 『못살겠다』고.아시아의 네마리 용들중에서도 으뜸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던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가. 어느 틈으로 물이 스며 들어와, 아니면 어디에 큰 구멍이 뚫려서 우리가 타고 가던 이 배가 오늘 이처럼 침몰의 위기를 맞이한 것일까. 원인을 분석해 본다.
첫째 기업을 한다는 자들 중에 도둑이 많기 때문이다. 권총을 품고 은행에 들어가 출납에 앉은 젊은 여성의 가슴에 그 총을 들이대고, 『돈 내놔』하는 그 자만이 강도인가. 권력구조의 매우 높은 자리에 앉은 몇몇을 매수하고, 은행의 장자리에 앉은 자들에게 뇌물을 먹여 맥을 못추게 하고, 확실한 담보물도 없으면서 5조 이상을 은행에서 끌어쓴 정씨 같은 사람이 그런 도둑에 속하는 것 아닐까. 물론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그를 무죄로 봐야 한다는 법의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둘째 공직자들 중에 도둑이 많기 때문이다. 94년엔가 터졌던 인천 북구청관내 세무공무원들의 비리 같은 것이 그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서른 여섯명이 작당하여 가짜 영수증을 써주고 세금을 가로챈 총액이 100억원을 넘는다고 했는데 그중에 안모라는 계장은 혼자서 55억원을 꿀꺽 삼켰다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부인 명의로 되어 있는 13억원짜리 빌딩과 수백평 되는 땅은 빼앗길 수 없다고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여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셋째 우리들 각자의 가슴마다 조그마한 도둑이 도사리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교통법규를 위반하고도 벌금을 내지 않으려는 도둑 심보, 자기집 쓰레기를 되는대로 싸서 남의 집 담 밑에 가져다 버리는 고약한 마음씨―크나 작으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라도 저는 득을 보겠다는 더러운 처세술―그러다 오늘 우리는 이 꼴이 된 것이다.
그 뿐인가, 나라와 겨레의 앞날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먹고 마시고 즐기며, 그나마 몇푼 갖고 있던 것을 저축이라고 해서 국민경제 살리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하지 않고 몽땅 뿌리고 날리는 옅은 생각과 천박한 생활태도―그런 것들이 도둑처럼 끼어들어 오늘의 우리 살림을 이렇게 형편없게 만든 것이다.
우리의 경제를 살리려면 이런 도둑들을 몰아내는 일이 시급한데, 아직도 반년이나 남아 있는 대통령 선거전에 지도층 인사들이 왜 이토록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인가.
언론사마다 앞을 다투어, 그렇지 않아도 뜨거워질 가능성이 농후한 후보 경선자들 사이의 이 싸움에다 왜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르고 부채질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6개월 뒤에나 실시될 대통령선거인데 벌써 인기는 누가 1위이고 누가 2위이고 하는 것이 우선 국민을 대하는 성실치 못한 태도라고 나는 믿는다. 유권자의 반 이상이 아직도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지 정한 바 없다는데 그래도 그 인기의 순위를 정해서 국민 앞에 내놓고 국민의 마음을 흔들고 꼬집고 웃기고 간지럽히며 일종 오락의 대상으로 삼으며, 후보라는 사람들을 일단 노리개로 만드는 것인가. 이 쇼를 진정 즐기는 사람들은 엉뚱한 사람들이 아닌가.
여당에는 또 웬 용들이 그렇게 많아서 야단들인가. 벌써 사무실을 여러 곳에 만들어 놓고 당의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우르르 밀려다니니 정말 꼴불견이다. 용들의 싸움이야 여당의 내부에서 조용하게 치르고 그 결과만을 국민에게 알려주면 될 일이지, 왜들 저렇게 돈을 물쓰듯 하며 야단법석들인가. 이 나라의 경제가 위기에 직면했다는데!
지금이 어떤 때인가. 대통령이 되어보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이땅에 사는 모든 국민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도둑을 몰아내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가 아닌가. 참으로 한심하다.<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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