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총련을 보면 「버린 자식」 같다. 버린 자식은 정확한 의미에서 버려진 자식이다. 그 어느 부모도 자식을 버리지 못한다. 버려진 자식의 처지는 부모가 자식의 못된 짓을 바로 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다 포기한 상태다. 자식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대학생은 당해보지 않더라도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알만한 나이다. 그런데도 한총련의 지도부는 버려지기를 바라는 듯이 행동했다. 학생운동이 이번처럼 여론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은 적은 없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맹목적 추종과 객기만 있었다.한총련 지도부는 시민을 두명이나 숨지게 하고도 심각하게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적당히 정당화하려 하거나 다른 이유를 들어 탈출구를 만들려 한다. 남의 생명을 담보로 한 어떤 목적도 정당화할 수 없다. 화염병이나 쇠파이프 등의 수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를 용인하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회다.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시작한 31명의 학생들은 성당측의 해산요청을 거부하면서 『야속하다』고 했다. 성당은 사람을 죽인 자도 보호해주는 곳으로 착각한 작태다. 착각은 현실을 도외시한데서 비롯된다. 현실은 과거를 알면 간파된다. 역사가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좀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학생들은 음미해야 한다. 한총련 지도부는 오늘과 내일이 아니라 단순히 어제로 시계추를 돌렸다. 「탁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군사독재 정권의 악습을 거꾸로 자행했다. 선배들의 수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송두리째 앗아간 꼴이다.
지금이라도 늦지않다. 처절한 자기반성을 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대학 내부에서 학생운동의 새 방향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활발해 다행이다. 학생운동이 없어져서는 안된다. 젊은이들의 기성세대 잘못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고인 물을 흐르게 하는 활력소다. 학생 모두가 「역사의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아야 한다. 우공이산의 교훈도 함께 깨달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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