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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물가책임’ 탁상공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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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물가책임’ 탁상공론 비판

입력
1997.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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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범위 등 비현실적·어설픈 선진국 흉내내기”/정부 금융개혁안에 포함… 금융계 등서 문제제기『한국은행이 물가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나. 물가가 어느 정도 올라야 한은총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인가. 또 물가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없는 것인가』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14일 청와대에 보고한 금융개혁방안중에 「한은이 통화신용정책을 전담하되 물가안정에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 관련 부처와 금융계에서 이같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의문뿐 아니라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인 발상이고 물정을 모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강부총리는 『한은에는 권한도 책임도 없었다. 앞으로 권한(통화신용정책)을 주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물가안정)도 져야 한다』는 논리다. 형식논리상으로는 일견 그럴듯 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재정경제원 내부에서조차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는 지적이다.

물가상승의 요인에는 통화적 요인과 비통화적 요인이 있다. 물가지수에는 엄청난 영향을 주지만 통화량변동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품목들도 많다. 예컨대 농산물 공공요금 사교육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 5년간 농축수산물값은 연평균 0.7%, 공공요금(교통요금 납입금 등)은 1.1%, 집세는 0.5%, 개인서비스요금(사교육비 외식비 등)은 0.7% 각각 올랐다. 지난해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5.0%인 점을 감안하면 이중 3%분은 최소한 한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강부총리는 이런 점을 감안, 뉴질랜드가 활용하고 있는 「코아(CORE) 인플레이션」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코아 인플레이션이란 국제유가상승 등 외부적인 요인을 제거한 물가상승률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총재는 경직성 품목분(3%)을 제외한 코아인플레이션 부분만 책임을 지면 되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많다. 코아 인플레이션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지, 또 설사 그 범위를 정하더라도 한은이 몽땅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체 통화량의 70%가량으로 추정되는 어음과 정부가 관장하는 국채 등은 한은의 관리영역을 벗어난다』며 『특히 정부사업이나 세금도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미국 독일 등 중앙은행의 정책기능이 완전히 독립된 선진국들의 경우 중앙은행에 물가안정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물가상승률을 ○%내로 안정시키지 않으면 중앙은행총재가 물러나야 한다」는 식의 제도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중앙은행이 단기적인 물가지수 안정에 급급할 경우 통화신용정책이 왜곡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과 독일의 중앙은행은 통화신용정책 전반에 걸쳐 의회에 책임을 질 뿐이다. 최근 중앙은행제도를 개편한 일본도 정부와의 정책협의에 대해서만 의무화했을 뿐이다. 물가상승의 책임을 중앙은행과 비중앙은행으로 계량화할 수 없는데다 물가관리의 상당부분은 정부의 몫이라는 게 이유다.

결국 중앙은행에 물가안정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은 유례도 드물고 실효성도 약한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어설픈 선진국 흉내내기라는 비판도 있다.<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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