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지체없이 열라(사설)

임시국회는 지체없이 열려야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여야 정치권이 입만 열면 걱정하는 각종 민생의안을 비롯,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이 태산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리당략에 얽힌 이견 때문에 국회의 문은 닫혀진 상태다. 지금 계류중인 80여건의 각종 민생법안 등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국회를 여는데 무슨 조건이 필요한가. 국회를 소집할 때마다 여야정치권이 벌이는 소모적 정쟁양상을 바라보면서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특히 한보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치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혁파하는 문제는 이제 국민적 과제로 대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돈정치 혁파를 위한 정치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민적 합의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번 대국민담화에서 정경유착으로 얼룩졌던 우리 정치의 고비용 저효율구조를 혁파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입법을 공약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임시국회소집에 합의를 하지 못한채 사실상 수수방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입장을 앞장서서 추진해야 할 집권당이 사소한 당파적 이해를 앞세워 개원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개원의 한 걸림돌인 제도개혁특위의 구성문제만 해도 그렇다. 여당은 의석비 배분을 주장한다. 하지만 어차피 공정한 게임룰은 당사자간의 완전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볼 때 신한국당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야당이 요구하는 여야동수가 사리나 이치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고 또 그런 전례도 있었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신한국당의 임시국회소집에 임하는 자세라고 본다. 지금 신한국당은 이회창 대표를 비롯한 지도급인사들이 이른바 「용들의 전쟁」이라는 대선후보경선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신한국당지도부는 솔직하게 말해 임시국회에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가 없다.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경선이 갖는 중요성을 모르는바는 아니나 집권당으로서의 책무 또한 어느 순간에도 소홀히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대선이 불과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돈 안쓰는 선거, 깨끗한 정치를 위해 선거법과 정당법, 정치자금법을 대폭 손질하는 일이 화급한 실정이다. 진정 여야 정치권이 민생을 걱정하고, 깨끗한 정치를 위한 개혁입법에 관심이 있다면 이번 주라도 임시국회소집에 합의해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더 이상의 정쟁으로 임시국회소집을 실기했을 때 쏠릴 국민적 지탄을 정치권은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최근 야당이 임시국회소집 협상의 전제조건에서 대선자금문제를 걷어내고 「개혁특위」에서 동수구성만을 관철하기로 한 것은 매우 현실적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분명 신한국당이 화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