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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7.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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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청 앞 화단에 정도전 집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조선 태조의 한양천도(1394년) 4년만에 이방원에게 척살당해 62세로 풍운의 일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던 집터이다. 그러나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쓰여 있지는 않다. ◆그는 조선왕조 임금들의 위패가 봉안된 종묘의 정문을 창엽문이라 이름지었다. 창자를 풀어보면 입·팔·군이니 28 임금이요, 엽자도 입·십·팔·세이니 왕조가 28대까지 가리라 내다본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5백년을 내다보았다는 그도 자기운명은 어쩔 수 없었던지 비명에 가고 말았다. ◆한양천도는 물론, 새 왕도의 설계와 건설에 그의 입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궁궐의 위치에서 도성의 기지, 종묘만이 아니라 모든 궁, 문의 칭호를 정했다. 아니 그가 없었으면 조선이란 나라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의미를 갖는 그에 관한 평가는 사후 6백년동안 일그러지고 변색되었다. 방원이 그를 제거하고 왕위(태종)에 오른 뒤 정치적 이유로 폄훼된 것이다. ◆태조실록에는 요동정벌을 꿈꾸었던 그가 국량이 좁고 시기심이 많은 인물로까지 묘사됐다. 얼마전 한 TV드라마는 그를 척살하고 자기 형제들까지 도륙한 방원을 영웅으로 묘사해 그는 민심을 읽지 못했던 인물로 비쳐지기도 했다. ◆정도전은 당시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이상정치의 실현을 위해 몸바친 개혁정치가였다. 역사의 기술과 평가는 승자의 뜻에 좌우되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개혁을 기치로 내건 세상에서 그토록 매도당하다니 역사란 무엇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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