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상황 답변 총평/김대중 후보 침착·구체적 답변/이홍구·박찬종 고문은 소신형시민포럼의 하이라이트는 가상현실을 설정한뒤 국가최고통치자 로서의 대처능력을 묻는 질문. 초청토론자로 나선 대선후보·주자들은 정책관련 상황(12개)과 인간적인 측면을 묻는 질문(12개)중에서 하나씩을 무작위로 뽑아 답변했다. 두종류의 질문은 각각 흰봉투와 녹색봉투에 담겨져 봉인된 상태로 제시됐고 초청토론자가 이를 직접 뽑았다.
가상질문은 모두 24개가 준비됐으며 하루 2개씩 모두 20개가 개봉됐다. 개봉되지 않은 가상질문은 4개. ▲광화문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벌어졌을 경우 ▲뉴욕발 서울행 민항기가 태평양상공에서 실종됐을 경우 ▲평소 지병을 속이다 입원할 일이 생겼을 경우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가 나타났을 경우 등이다.
답변은 질문에 따라 각양각색이었다. 문제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는 경우가 있는 가하면 원론수준을 맴도는 면피성 답변도 적지 않았다. 일부 주자는 질문의 요지가 정책선택과 관련해 구체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었음에도 궁여지책으로 핵심과 동떨어진 답변을 하기도 했다.
2일 첫번째 초청토론자인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는 「북한주민 500명이 휴전선을 통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남북한간에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새벽 5시에 받았을 경우 어떤 대책을 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데프콘(DEFCON)―3 발동 등 국내외 각종 비상조치수단을 침착하게 답변해 호평을 받았다.
공사구분이 미묘한 사안임에도 소신있는 답변을 내놓는 경우도 있었다. 평소 신중한 언행으로 정평이 난 신한국당 이홍구 고문(6월3일)은 「외국국빈과의 회담을 앞두고 죽마고우가 임종직전 만나고 싶어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받자 『만나러 가겠다』고 명쾌하게 답변했다. 신한국당 박찬종 고문(6월10일)역시 『대학생들이 대통령에게 계란세례를 퍼부으며 시위를 벌였다고 하더라도 이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소신형 답변을 했다.<장현규 기자>장현규>
◎시청자·독자 반응/까다롭고 다양한 ‘민의 목소리’ 쇄도/질문수위 형평성·주자답변 이의제기 등 즉각 날아와
시민포럼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뜨거웠고 즉각적이었다. 포럼현장의 팩스, 한국일보사 편집국과 SBS보도국의 전화는 때아닌 「포럼 특수」를 반영하며 바삐 울렸다. 독자들의 관심은 질문내용에서부터 패널리스트들의 질문태도, 토론자들의 답변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또 까다로웠다.
○…독자와 시청자들이 가장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한 통로는 한국일보 편집국과 SBS보도국의 전화와 팩스. 상오 10시 포럼 생중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양사의 전화통은 불이 났다. 전화의 내용은 『패널리스트들의 질문수위가 너무 높고 거칠다』는 항의에서부터 시작, 『이 사항은 대선주자에게 꼭 물어봐달라』는 「압력성 요청」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특히 포럼에 나온 대선주자들이 패널리스트에 의해 곤혹스런 처지에 몰리면 이들을 감싸는 의견이 즉각 양사에 전달돼 주자들 모두 이미 나름의 「전화부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추측을 유발했다.
특히 여권의 유력주자인 이회창 신한국당대표, 이수성 고문을 상대로한 포럼에서 질문수위가 잠시 낮아지면 곧바로 『왜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는 까다롭게 다루고 여권 주자는 봐주느냐』 『여야를 차별대우 하느냐』는 등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에앞서 포럼시작전 양사가 포럼개최 사실을 공고하자 팩스, 우편 등을 통해 국내는 물론 미국 등 국외에서까지 독자·시청자들의 다양한 의견이 들어왔다.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 포럼현장에 설치된 두대의 팩스에는 하루에 수백장을 넘는 「민초의 목소리」가 접수됐다. 김대중 총재(2일)에게는 당내 민주화, 정계은퇴 번복, 노태우씨로부터의 20억원 수수문제 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특히 『김총재가 대통령이 되면 현직 국회의원인 장남이 누구처럼 「소통령」행세를 하지 않겠느냐』는 등 김총재의 아들문제에 대한 추궁성 질문이 많았다. 신한국당 이홍구 고문(3일)의 경우 최대 약점인 노동법날치기처리, 김현철씨와의 관계 등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신한국당 최병렬 의원(4일)은 『서울시장시절 벌금을 많이 올렸는데 개선된게 하나도 없다』는 등의 문제 제기를 당했다.
이수성 고문(5일)때는 이고문이 약사의 한약제조시험을 긍정하는 답변을 했다가 한약사들로부터 『그 시험은 명백한 부정이다』 『감사원도 부정시험이라고 결론 지었다』는 등의 항의성 의견이 쇄도, 사안의 민감성을 반증했다. 신한국당 김덕룡 의원(6일)은 『김영삼 대통령의 가신출신으로 현정부의 개혁실패에 책임이 있다』 『김현철씨문제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보지 않느냐』는 등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이회창 대표(7일)에게는 대표직사퇴여부같은 정치적 관심사에서 경제회복, 교육 등 국정사안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야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특히 이대표의 「대쪽」성품을 지적, 『김대통령도 고집때문에 실정을 범했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대표의 대쪽 이미지도 같은 점에서 거부감을 주고 있다』는 따끔한 발언도 있었다. 신한국당 이한동 고문(9일)은 5·6공에서의 전력을 주로 지적당했다.
신한국당 박찬종 고문(10일)은 살고있는 서초동 50여평 빌라의 전세가격이 1억원내외라고 답변했다가 시청자들로부터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 아니냐』 『실물 경제를 너무 모른다』는 등의 호된 추궁을 당했다. 이인제 경기지사에게는 부인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고 한 시민은 『서울을 왔다갔다 하면서 제 시간에 도착하기위해 교통위반을 많이 하고 있다』고 「고발」, 이지사로부터 『시정하겠다』는 다짐을 받아 내기도했다. 김종필 자민련총재는 『쿠데타로 내각제정부를 무너뜨리고서 이제 와서 내각제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독자들의 지적을 감내 해야만 했다.
이밖에 한국일보와 SBS의 인터넷 홈페이지, 유니텔 나우누리 등 PC통신에도 독자·시청자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이곳에 접수된 의견도 물론 포럼에 적극 반영됐다.<신효섭 기자>신효섭>
◎시민포럼 뒷얘기/‘안방유세시대’ 주자들 치밀한 준비/사전 도상연습 철저… 미소·유머로 이미지 변신 시도
○…대선후보·주자들은 TV토론의 특성을 감안, 답변내용 못지않게 분장이나 코디네이션, 답변태도 등 외형적 이미지에도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특히 김대중 국민회의총재, 신한국당의 이회창 대표와 박찬종 고문 등은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해 부드러운 「갈대형」으로 변신을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김총재는 강성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듯 까다로운 질문에도 시종 미소를 머금으며 조용한 어조로 답변했고 이회창 대표는 트레이드마크인 「대쪽」 「법대로」에서 풍기는 차갑고 강렬한 인상을 없애려 노력했다. 박찬종 고문도 특유의 「독불장군식」 답변자세를 지양하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반면 최병렬 의원과 이인제 경기지사는 날카로운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하며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불도저형」의 모습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패널리스트들은 토론자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등 가시돋친 민감한 질문을 여러차례 던졌다. 대부분 토론자들은 자신있고 소신있는 답변태도를 견지했으나, 일부는 궁지에 몰려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야당의 두 총재는 고령과 건강관련 질문을 받았으나 무난히 받아넘겼다.
이회창 대표는 체중미달로 군대에 가지않은 두 아들의 병역문제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고는 무척 난감해 했다. 이대표는 『장남의 키가 179㎝인데 판정기준인 43㎏을 넘지 않겠는가』는 질문에 『150㎝ 키에 몸무게가 90㎏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응수했다. 김덕룡 의원도 저서 「머리가 하얀 남자」에 실린 구체적 내용을 캐묻는 질문을 받고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고문은 잦은 당적변경과 말바꾸기에 대한 지적으로, 이수성 고문은 「무임승차론」 「원조TK」시비에 대한 해명으로, 이홍구 고문은 유신찬양 기고문 여부와 관련한 따끔한 질문을 받고 진땀을 뺐다. 최의원은 70년대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연루사건」의 해명을 요구받았고, 이지사는 95년 경기지사 후보경선의 불공정성문제로 추궁을 받았다.
○…여권 주자들이 상대방주자에게 서면질의를 하게 한 것도 시선을 끌었다. 서로 물고 물리는 날카로운 질문공세가 있을법도 했으나 정치현안, 특히 당내경선과 직접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질문을 삼갔다. 신한국당 8명의 대선주자중 이회창 대표 이수성 고문 김덕룡 의원 등 3명은 아예 서면질의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내파와 영입파, 민정계와 민주계의 상반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언중유골성 질문도 적지않았다. 이한동 고문은 자신과 지역배경이 겹치는 이인제 경기지사에게 「경기도를 위해 공헌한 점을 구체적으로 밝히라」는 주문을 했고, 최병렬 의원은 법조출신의 이대표에게 국정과 재판의 차이점을 애써 물었다. 이홍구 고문은 자신이 제기한 권력분산론을 모든 주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질문했고, 박찬종 고문은 가장 자신있는 요리, 음식물 쓰레기대책, 만화산업육성방안 등으로 질문주제를 다양화했다.
○…초청토론자들은 치밀한 준비를 했다. 대부분 토론자들은 포럼 하루 전에는 다른 일정을 잡지않고 개인사무실 혹은 자택에서 대책을 숙의하고 도상연습을 했다. 첫 출연자인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는 지난 1일 일산자택에서 도상연습을 가졌다. 김총재의 한 측근은 『김총재가 앞선 두 차례의 TV토론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게 오히려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9일 나왔던 신한국당 이한동 고문도 전날 염곡동 자택에서 현경대 의원 등 측근들과 밤늦게까지 예상질문·답변을 정리했다. 주자들이 특히 신경쓴 부분은 패널리스트들의 면면. 주자들은 패널리스트들의 성향을 미리 파악해 대비하려 했지만 한국일보사와 SBS는 이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패널리스트들은 포럼시작 2주일전부터 한국일보·SBS 양사 기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질문자료를 정리했고 당일에는 아침 8시에 현장에 나와 1시간30여분동안 사전 토론을 갖고 전열을 가다듬었다.<장현규·김성호 기자>장현규·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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