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대립시대 끝나 경제무능 정부는 국민이 차갑게 외면요즈음 서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선거를 하면 예외없이 좌파정당이 정권을 잡게되어 사회주의 도미노현상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사회주의 개념을 재규정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우후죽순 같이 나타나고 있는 서유럽 좌파정권은 마르크스가 제창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망령을 되살리는 것은 아니다. 다시말해 생산수단의 국유화나 중앙통제계획 경제를 전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정당이 집권하는 나라들의 정책을 분석해 보면 극히 비사회주의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주의 이념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집권하게된 것이 아니라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의지가 배경에 깔려있는 것이다.
한편 중·동유럽의 경우는 서유럽과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90년을 전후하여 공산체제가 붕괴된 후 루마니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비공산정권이 수립되었다. 그후 실시된 두번째 총선에서는 다시 구사회주의 정당에 뿌리를 둔 정치집단이 정권을 되찾는 추세였다. 준비없이 자본주의체제를 도입한 후 이윤을 내지 못하는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그 결과 실업자가 양산됨으로써 옛 공산체제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었다. 그러나 96년 전후로 실시된 세번째 총선거를 통하여 보수우파정당이 재차 집권하였다. 이와같은 정당지지 성향에 나타난 기복현상은 정치이념보다는 오히려 경제운영의 성패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특징을 보인다.
서유럽에서 현재 순수한 보수정당이 집권하는 나라는 독일 스페인 터키 등 소수 뿐이므로 숫자상으로는 좌파 사회주의정당이 정치판도를 석권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사회주의색채가 희미한 빛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좌파와 우파를 구별하는 경계선이 불분명해졌으며 보수정당이나 사회주의정당의 구별없이 국민생활의 질을 높여주지 못하는 무능한 정권은 가차없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다.
5월1일 총선에서 18년만에 집권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도 국유화 포기,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배제 등 보수적인 정책노선을 과감히 채택했다. 79년 대처의 보수당에 정권을 뺏긴 노동당은 블레어가 83년 당수에 취임한 후 사회주의색채를 씻어냄으로써 범국민정당으로 변신하여 오늘의 영광을 얻게되었다. 젊고 참신한 블레어가 과감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개인적 정치역량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표로 결집되었다.
이어 6월2일 총선에서 압승한 프랑스의 사회당도 현실에 부응한 융통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영국의 경우와 흡사하다. 조스팽 사회당 제1서기는 93년 총선에서 참패했던 경험을 살려 인기없는 정책을 과감히 버리고 국민의 호감을 얻는데 노력하였다. 그는 유럽연합(EU)의 단일국가 형성과정에서 단일통화인 「유로」제도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이를 미끼로 사회복지혜택을 축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80만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와같은 우파정당과 구별되는 최소한의 정책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는 민영화와 사유화를 강화하여 강력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세수를 감면하는 한편 복지예산을 축소하는 등 전형적인 우파정권의 정책을 수용하는 융통성도 보임으로써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끝으로 좌파내각의 대외정책을 전망해 보면 전반적으로 기존궤도를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지만 유럽통합 추진속도에는 상당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디(이탈리아), 블레어(영국), 조스팽(프랑스) 총리는 이구동성으로 국민들의 희생이 없는 한도내에서 유럽통합을 추진해야 하고,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유럽통화 동맹가입기준도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정권의 대한반도 관계는 악화하기 보다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사회당 강령에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어 한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다방면에서 긴밀히 협조할 것이다. 유럽좌파 정권은 실익이 없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간의 실질적 관계개선없이 일방적으로 북한과 수교해서는 안 된다는 남한정부의 요구를 EU국가들은 집권당이 바뀐 뒤에도 기존정책대로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외교안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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