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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좌의 시대는 지났다/신상웅 소설가·중앙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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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좌의 시대는 지났다/신상웅 소설가·중앙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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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을 「용들의 전쟁」이라고도 한다는 요즈음 이들의 각축전을 바라보는 시민의 시각은 곱지 않은 경우가 있는 반면 더러는 재미있어 하기도 한다. 그런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시민이 어떻게 보느냐에 상관없이 모든 언론매체가 다 동원되어 이 용들의 다툼을, 심지어는 추측이거나 시시콜콜한 사생활 찌꺼기까지 다 들춰내면서 시민을 부르고 있는데 어찌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배길 수 있으랴.물론 여당만에도 여덟이나 되는 용들이 오늘같이 나라 전체가 패배와 허무주의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판에 무슨 무책임한 짓거리들이냐는 질책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바로 집권당 안에서 이런 풍경이 빚어지고 있다는데 주목할만한 것이 있다. 말하자면 아무리 아귀다툼 벌이듯 해봤자 그야 접시 물 속의 반란일 뿐 최종후보는 집권자의 손에 의해 간단히 들려진다는 지금까지의 관례는 적어도 이번에는 행사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번 뿐만이 아니고 앞으로 영원히 집권자의 그런 전횡의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 분명해 보여 기분이 좋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 뛰고 있는 경선자들은 바로 실전에 임하고 있는 셈이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실감나는 전투를 관전하고 있는 것이고 끝까지 정정당당히 싸워 이긴 전리품으로 대선주자 지명서를 받아 높이 치켜드는 몸짓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하긴 본선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승자가 가려진다면 선거가 흔히 말하는대로 축제 같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우리 선거는 지겹게도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일이 없다.

요즘의 TV토론은 그런 아쉬움을 다소 달래주는 진일보한 선거 경쟁 양상이라는데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만 하다. 재미도 없지 않다고 하면 말 실수가 될지 모르겠지만 「대통령병이란 저런 증세를 보이누나」하게 된다면 그만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거기 등장하는 모두가 다 그런 병자라고 하면 과장이지만 잘못 발 들여놨다가 그렇게 됐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어도 감염 정도가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 정작 명망있는 인사들은 아예 대통령선거 따위(?)에는 나설 생각조차 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텔레비전을 지켜보면서 역시 저 10명의 용들은 권력의 정점으로서의 대통령 밖에 관심이 없구나 하게 되는데, 요컨대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들중 단 한 사람도 문화 분야에 관심을 보인 경우는 없었다. 지금 나라가 온통 정치와 경제에 관련해서만도 헉헉거려서일까. 그게 아니다. 그들은 문화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아예 없다. 문화산업의 일종인 방송매체가 마련한 질문내용에서도 문화가 외면당하고 있는데 하물며 대선주자들을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문화부문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질의 속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이들 틈입자 중에 각각 다른 후보를 상대로 거듭 나온 문화적 질문은 다름 아닌 우리의 자랑스런 누드모델 이승희에 대한 관심의 표시였다. 「인터넷을 통해 그녀와 만난 일이 있는가, 있다면 그 대단한 사건에 대한 소감은」

앞으로 다가오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그것도 정부가 먼저 그렇게 말했다. 하기야 정부가 내거는 구호는 현수막을 내거는 것으로 마감하고 더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문화를 외면하는 국가나 사회는 희망이 없다는데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화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야만을 길들이는 것이 문화 아니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비리 부정 폭발 붕괴로 이어지는 야만 속에 파묻혀 살아야 할 것인가. 이젠 시민이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는다. 대권을 노리는 이들의 시선이 권좌에만 가 있다면 행여 선거에 이긴다 하더라도 그건 곧 비극적인 길로 들어서는 일일 것이다. 앞으로의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 서는 것이 아니라 중재자나 조망자-네거리의 교통경찰 같은 사람이어야 하게 되어 있다. 그런 덕을 갖춘 행정가가 아니고는 배겨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교사로서 역력히 보여준 것이 현정권이다. 국민의 정치감각이 여기까지 와있는데 과거로 돌아가진 않는다. 따라서 우리 대선주자라는 용들은 새 대통령학을 공부할 일이다. 문화를 익히는 것이 형이하의 통치감각을 청산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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