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고전이 고리타분하달 텐가/김유신전·구운몽 등 국문·한문·구비문학 정수/상세한 주석·깔끔한 번역/이번에 3차분 10권 발간『학문이 정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없는 것이 차라리 낫고, 글이 실용에 쓰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오늘날 사람들이 경학을 말하는 것을 보면, 성이니 이니 하는 것만이 경학인줄 알고 있을 뿐 모든 사물과 일이 경학을 버리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수원에 성을 쌓은 일을 두고 말한다면, 일에 닥쳐서 처리하는 방도를 모르는 사람은 모두 경학에 어둡고 식견이 트이지 않은 사람이다. 경전의 가르침을 마음에 터득한 사람이라면 성이나 수레를 만드는 법 또한 그 바탕 위에서 추론하여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인문학계의 맹목적인 외국이론 추종을 꾸짖는 듯한 이 귀절은 「홍재전서」에 나오는 글이다. 이 책은 조선 정조대왕(홍재는 호)이 쓴 글을 모은 전집으로 이번에 그 일부가 우리말 번역을 얻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가 13일 출간한 「한국고전문학전집」 3차분(10권) 가운데 28권 「홍재전서·영재집·금대집·정유집」에 들어 있다. 홍재전서는 원래 184권 100책에 영인본만 5권이나 되는 분량이어서 이번 작업은 전집 번역의 첫 걸음으로 평가된다. 역주를 맡은 연세대 국문과 송준호 교수와 안대회 강사는 『홍재전서를 읽어보면 조선조 문예부흥을 이룩한 정조는 참으로 무서운 양반』이라며 『이번 나온 것은 문학 부분만 뽑은 것이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정조의 시 한수. 「동곳·패물 곱게 차려 봄날 대에 모여들자/술기운 꽃향기에 비단 돛배 띄웠도다/뭇 신하 자제들아, 너희에게 당부하니/이 잔치 이 술잔을 한평생 잊을건가!」 신하들과 술잔을 나누며 정치와 고금의 역사를 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고전문학전집은 1년에 5,000만원씩 연강재단의 지원을 받아 국문·한문·구비문학중 정수만을 골라 원문과 현대어역을 나란히 싣는 시리즈. 상세한 주석과 깔끔한 현대어번역은 어렵고 고리타분할 것만 같은 고전을 가까이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93년에 1권 「시조I」 등 1차분 10권, 95년에 12권 「춘향전」 등 2차분 10권이 나왔다. 이번에 나온 3차분은 21권부터 「시조Ⅲ」 「김유신전」 「조웅전·적성의전」 「유충렬전·최고운전」 「홍길동전·전우치전·서화담전」 「천군소설」 「구운몽」 등이고 29, 30권이 「제주도무가」와 「서사무가I」이다. 민족문화연구소는 앞으로 매년 10권씩 모두 100권을 출간할 계획이다. 각권 1만8,000원.<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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