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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이런 테너가 있다/39세 스타탄생 김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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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이런 테너가 있다/39세 스타탄생 김남두

입력
1997.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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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과 없는 지방대 출신/당구장 주인·음악학원장 그리고 늦바람 유학…/좌절과 방황 딛고 그는 이제 막 세계무대에서 손색없는 테너로 태어났다테너 김남두(39). 지난 3월 정명훈씨가 지휘한 KBS교향악단의 「오텔로」공연이 있기 전까지 전혀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힘차고 눈부신 고음을 자랑하는 그의 노래를 듣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테너가 태어났음을 알았다. 지난 6∼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 올려진 오페라 「아이다」를 통해 그의 가능성은 「미완의 대기」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란 평과 함께 더 큰 신뢰를 얻게 됐다.

갑자기 유명해져서 그는 지금 얼떨떨하다. 부담도 된다. 『이제 시작입니다. 걸음마 단계죠. 노래, 연기, 공부할 게 많습니다. 성악의 길은 끝이 없어 완벽은 없지요. 파바로티는 지금도 레슨을 받습니다. 오직 노력할 뿐이죠』

무지개를 찾아 먼 길을 헤매고 에둘러 가면서도 끝내 그 꿈을 놓지 않은 집념이 오늘을 만들었다. 전북 부안군의 궁벽진 시골에서 태어난 그가 성악에 눈뜨기는 고교 시절. 야구를 하고 싶어 야구명문 군산상고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노래를 만났다. 중학 때 큰 편이었던 그의 신장은 현재 175㎝이다. 음악수업 시간이 없었지만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면서 빠져들었다. 매일 새벽 산에 오르며 노래 연습을 했다. 음대에 가겠다니까 선생님들은 「아니, 네가?」하고 놀랐다. 성악을 아무나 하느냐면서. 집안에서도 반대했다. 졸업 후 2년만에 간신히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입시 넉달 전에 난생 처음 성악레슨을 받고 전주대 음악교육과에 들어갔다. 당시 전주대는 성악과가 없었다. 거의 혼자 공부했다.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죽어라고 노래만 했다.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길을 몰랐다. 유학절차나 학교정보에 캄캄했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그게 지방대학의 현실이었다. 일단 유학갈 돈을 벌자고 당구장을 차렸는데 2년만에 때려치웠다. 『어느 날 노래를 해보니까 전같은 소리가 안나더라구요. 소리는 항상 그대로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당구장의 담배연기에 목을 상한 겁니다. 노래 때문에 살았는데 노래를 잃었다 생각하니 견딜 수 없어서 관뒀어요. 당구실력이 500이었는데 그 때 정신 차리지 않았으면 지금쯤 노래는 포기하고 당구 실력 2,000의 귀신이 됐을 겁니다』 당구 뿐만아니다. 바둑 장기 탁구 노름 등 모든 잡기에 능하지만 다행히 술만은 자제하는 편이었다.

노래를 하려고 안양시립합창단에 들어갔다. 무리한 탓에 목에 이상이 와서 10개월만에 사표를 내고 전주로 내려와 이번엔 음악학원을 차렸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성악가의 꿈보다는 생활인으로 안주하게 될 즈음 사건이 생겼다. 90년 대학동문음악회로 전주에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출연했는데 공연을 본 한 교수가 간곡히 말했다. 『너는 여기 있으면 안된다. 이탈리아로 가라』 그 조언이 사그라지던 꿈에 다시 불을 지폈다. 마음 속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무작정 떠나기로 결심했다. 남들이 다 말렸다. 음대 간다고 했을 때 이상으로 미친 놈 취급을 받았다. 아내는 이혼하고 가라고 했다.

91년 유학을 감행했다. 도착한 첫 날, 이탈리아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고 음식 사먹을 주변머리도 없어서 종일 굶었다. 밤에 간신히 물 한 병을 구해 마시고 허기를 달래며 자고 난 이튿날 「하도 열이 받쳐서」 돌아가겠다고 전화를 했다. 아내는 고맙게도 그러려면 왜 갔냐며 타이르고 북돋아줬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탈리아에서 음악원에 들어가는 방법조차 몰랐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어렵게 서류를 갖춰 아퀼라음악원에 지원한 게 92년. 34세 때다. 그런데 연령제한 28세에 걸렸다. 일단 노래나 들어보라고 통사정을 했다. 결과는 수석합격.

공부는 더 힘들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 앞에 나가 노래해도 평가는 늘 그저그렇다는 거였다. 『참 힘들었죠. 나이는 많지, 희망은 안보이지, 처자가 딸린 가장이 돈 나오는 데는 없지, 정말 뭐라도 있으면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죠』(현재 그는 2살, 12살 된 두 딸을 두고 있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의 나날이 이어졌다. 두문불출하고 소리찾기에 전념했다. 아내는 『소리는 대가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대가의 노래는 편안한데 당신 노래는 왜 턱걸이하듯 힘드냐』고 했다. 고민스러웠다. 두세 가지 소리를 만들어서 선생 앞에서 들려주고 어느 게 낫냐고 묻고, 다음 날 또다른 소리를 만들어 묻고 하기를 2년. 마침내 어느날 「이거면 되겠다」는 감이 왔고 선생도 「됐다」고 했다.

95년 1월 처음으로 선생의 추천으로 작은 무대에 섰다. 3월에 첫 출연료를 받았다. 카라얀의 생애를 쓴 책 한 권이었다. 그뒤 로마의 한인교회에서 노래한 게 계기가 돼 유학 온 성악도 사이에서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다. 96년 4월 드디어 오페라 무대에 섰다. 「오텔로」였다. 오텔로를 할 수 있는 드라마틱 테너는 전세계적으로 드물다. 로마에서도 마땅한 가수가 없어 5년 간 공연되지 못했던 작품이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오페라는 「오텔로」, 프랑스 디종에서 한 「아이다」, 지난 2월 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문화행사로 올려진 「춘향전」세 편 뿐이다. 무대 경험이 적어 미숙하지만 가능성은 의심할 바 없다. 그는 지금도 로마의 한 사립음악원에 다니는 학생이다. 지금은 더 공부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주 제의가 들어와도 제한하고 있다. 대학 때 그가 늘 후배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날개를 펴자」. 음악팬들은 그가 세계 오페라의 심장부 메트로폴리탄이나 라스칼라를 점령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내가 본 김남두

○힘의 안배·테크닉 철저

박세원(테너)=정말 좋은 테너다. 국제수준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한국에서 여태까지 그만큼 훌륭한 라다메스(「아이다」의 주인공)는 없었다. 오페라는 힘의 안배와 테크닉이 중요한데 그 게 철저히 준비된 가수다. 완벽이란 없다. 무대경험이 적은 그에게 원숙함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무엇이 부족한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수로서 기본바탕이 매우 좋기 때문에 그런 점은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고쳐나갈 수 있다. 드라마틱 테너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한국인으로서도 유일한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시원하고 강렬한 소리

탁계석(음악평론가)=희망을 걸어도 좋을 테너다. 소리가 시원하고 품격이 있으며 강렬한 빛깔도 있다. 정통발성법에 기본기가 튼튼하고 소리의 힘도 여느 테너와 다르다. 지금까지 조수미 신영옥 홍혜경 등 소프라노, 고성현 김동규 등 바리톤이 우리의 자랑이었지만 모처럼 테너에서도 국제적인 가수가 태어났다. 노래에 아직 맛은 배어 있지 않다. 무대를 휘어잡는 힘도 부족하다. 호소력과 표현력을 더 닦는다면 가능성은 크다.

○이젠 자기관리 철저해야

장수동(오페라연출가)=소중한 가수다. 자질이 뛰어난 것은 틀림없다. 기본 성량이나 오페라를 대하는 자세로 볼 때 대성할 수 있는 그릇이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소리가 익어가는 과정에 있는데 너무 일찍 만개할까 두렵다. 성악가는 마라톤선수와 같다. 장거리를 뛰어야 한다. 잠깐 반짝했다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노래할 수 있는 가수가 되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맞는 역을 많이 하되 무대를 가려 서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아쉬운 점은 좀 더 느낌이 있는 가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열심히 공부해 재능을 잘 가꿔나갔으면 한다. 21세기형 가수니, 황금빛 테너니 하는 칭찬은 아직 이르다.<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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