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자명기 북 주민 인식전환 기회/분배투명성과 판문점 수송이 숙제12일 신의주에서 대한적십자사(총재 강영훈)의 옥수수가루 1천20톤이 북한 적십자회(위원장 대리 이성호)에 인도됨으로써 남북한 주민 화합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또 하나의 계기가 마련됐다.
남북한 적십자간의 직접 식량지원이 성사된 것은 84년 수재 당시 북측의 구호물자가 우리측에 전달된 이후 13년만의 일이다. 물론 95년 북한의 식량난 해소를 위해 우리측이 쌀 15만톤을 무상지원한 사례도 있으나 이는 정부차원의 지원이었다.
이에 따라 7월까지 예정된 1차 구호물자 5만톤의 정상적인 대북 전달에 청신호가 켜졌으며, 앞으로 남한 주민들의 대북 지원 운동도 더욱 활성화해서 북한의 식량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차 구호물자 5만톤(옥수수 기준)은 북한 주민들이 정상적으로 5일 가량 소비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이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의 구호대상지역인 15개 시·군의 13만9천명을 기준으로 하면 이들이 2년 가량 먹고 살 수 있는 규모다.
이번 대북 구호물자의 직접 전달은 남북 당국간 채널이 사실상 단절된 상태에서 성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이 사실상 당국의 성격을 갖고 있는 대한적십자사의 긴급구호대책본부 인원들을 신의주, 만포, 남양 등 북한내 인도·인수 지역에 받아들였다는 것은 종전의 경색된 대남 태도를 어느 정도 완화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는 것이다.
한적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구호물자에 한적 마크와 우리 기탁 단체명이 명기된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가난과 기아의 원인을 우리와 미국 등의 대북 적대적 태도 탓으로 믿어왔을 북한주민들에게 민족애와 동포애를 재확인시켜 줄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적은 19차례에 걸쳐 40억원 상당의 구호물자를 북한에 전달했다. 그러나 한적의 구호물자들은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마크를 부착한 채 간접적으로 북한주민들에게 전달됐다. 북한주민들이 제 눈으로 남한주민들의 동포애를 인식할 기회는 없었다.
19일까지 전달될 식량 1만1천2백톤 중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각각 기탁한 옥수수가루 4천2백톤, 옥수수 5천톤은 평안도·함경도·자강도 등 대상지역이 지정돼 있다. 1천만 실향민들이 고대하던 「내고장 돕기」의 꿈이 실현단계에 들어섰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배의 투명성 확보와 판문점 수송 문제 등 앞으로 남북한 적십자간에 풀어야 할 난제들은 상존해 있다. 역시 판문점을 통한 육로수송이 가장 효과적인 수송경로이고 84년 남한 수재 때 북한의 구호물자가 판문점을 통해 전달된 선례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계속 양측간에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또 구호물자가 북한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여부, 즉 분배의 투명성 문제에 이의가 제기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식량지원 뿐 아니라 전반적인 남북관계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적은 7월까지 1차 구호물자 5만톤이 무사히 전달되면 2차, 3차 지원을 계속할 예정이다. 한적의 대북 구호물자 전달은 식량을 매개로 남북관계 개선의 작은 물꼬를 트고 있다고 할 수 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