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각계인사에 듣는다:4)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각계인사에 듣는다:4)

입력
1997.06.13 00:00
0 0

◎“의식개혁 해야 다시 설 수 있다”/지도자는 솔선하고 국민은 법·원칙준수 노력/“나부터 올바로” 주인의식 되찾아야 난국타개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는 『침체된 나라를 활기차게 만들려면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자신은 태만하면서 남에게만 근면과 노력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청빈과 혜안으로 공직사회의 표상이었던 강총재는 『난국타개책은 그 어디에 숨어있는 게 아니고 우리 내부에 있다』며 『지도자는 솔선수범하고 국민들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국민의식의 대개혁 운동을 전개해야한다』고 역설했다.<편집자 주>

-나라 전체가 침체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생동감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어렵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위기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추락하는 국민경제,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로 인한 안보문제 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위기중의 위기입니다. 쉽게 말해 먹고사는 데 대한 불안이 있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이 흔들리면 그게 바로 위기이겠지요.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내부에 해법이 있습니다. 바로 주인의식을 되찾는 것입니다.

자신은 법을 안지키면서 남은 지키라고 하고, 자신은 흥청거리면서 남은 근면하라고 한다면, 그 결과는 파멸과 쇠락 뿐일 것입니다.

이기주의 독선 사치 과소비 3D현상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경제가 잘 된다면 이상하겠지요. 나부터 법을 지키고, 노력하고, 근면하면 나라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국민의식의 일대 개조, 다시 말해 민주시민의식의 확립이야말로 그 어떤 난국타개방안 보다 중요하고 효과적이라 봅니다』

○위기극복공감 긍정 측면

-실제 의식개혁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은 무엇입니까.

『우선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말만 하고 행동은 뒤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을 이끌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 지도자가, 우리 국민이 의식의 대개혁을 이룰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비관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반추해보면, 무수한 외침과 시련속에서도 단일민족을 지켜낸 긍지과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위기를 체감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업 근로자 정부 등 경제주체들에게 위기극복을 위한 충고를 하신다면.

『역시 주인의식을 가져야합니다. 아울러 법을 지키고 합리성, 민주성을 고양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렇게 해도 괜찮고 너는 엄격하게 살아라」는 식의 논리는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병들게 합니다. 이 충고는 기업가 근로자 공직자 모두에게 하고싶은 얘기입니다. 고교생을 상대로 준법의식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80%가 「법을 지키면 손해」라고 답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이 참담한 현실을 앞에 두고 모두가 반성해야합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청소년들이 이런 처지에 있다면, 학교교육도 문제고 기성세대가 보여주는 행태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금년은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또다시 천문학적인 대선자금으로 경제가 질곡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않습니다.

『한보사건은 정경유착의 마지막이 돼야합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고, 국민이 감당할 수 없는 대선자금이 쓰인다면 경제는 물론 나라의 장래도 어둡다고 봅니다. 대통령 아들까지 감옥에 보내는 이 처절한 현실에서 정치인이건, 기업가이건, 근로자이건, 공직자이건 모두가 결심을 해야합니다.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제도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보다 나은 제도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 모두가 이번 대통령선거를 감시해야합니다. 돈 쓰는 후보나 정당, 거짓말하는 후보나 정당에 절대 표를 주지 말 것이며 아예 적극적으로 문제삼는 시민정신을 가져야합니다. 영국도 어느 날 갑자기 민주국가, 깨끗한 국가가 되지 않았습니다. 3번이나 부패방지법을 만들 정도로 부패와의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 노력이 선거자금이 많이 쓰이지 않고 정경유착이 없는 지금의 영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적십자사 총재로 해외에 자주 나가시는데 어떤 느낌을 가지시는지요.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은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법치국가가 바로 선진국입니다. 그러면 예측이 가능하고 불공정 시비도 없고 경제나 정치문제에도 불복이 그만큼 줄어들어 갈등의 소지가 없어집니다. 정치적 갈등으로 국력이 소모될 일이 별로 없겠지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합리주의 정신, 법치주의 정신이 착근돼있지 않습니다. 물론 역사의 잔흔탓이기도 합니다. 조선조 500년 동안 형성된 유교문화는 합리주의 보다는 인간적 측면에 기울어 있습니다. 감정적 사회는 합리성을 도외시하게 합니다. 감정은 갈등과 분열을 촉발시켜 국민적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바로 이 점이 우리 경제, 나아가 나라의 동력을 추락시키는 요인입니다』

-난국에 처한 나라를 되살리려면 차기 리더십은 어떠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지도자는 우선 역사관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과거와 단절하는 입장에 서면 안됩니다. 지난 시절에는 과오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분명히 좋은 점도 있게 마련인만큼 지도자는 계승할 점과 버릴 점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생겨날 것입니다.

아울러 여러차례 얘기했습니다만 합리주의를 중시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국민감정을 이용하기 시작하면 선동정치, 인기위주의 정치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차분하게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안정감은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지도자는 사심을 버려야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법치, 합리주의의 틀을 만들어 위기가 닥쳐도 모두가 참여하는 제도로서 극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구체적 문제를 진단해주십시오. 우리경제의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시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십시오.

○독점재벌·빈부갈등 부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론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재벌중심의 경제가 형성된 점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재벌중심 경제는 독점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력, 순발력이 떨어집니다. 힘의 우열이 너무 분명하면 새로운 시도, 노력이 없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급속한 산업화를 위해 입지선정이 영남권에 치우치면서 서부지역의 불만이 적지 않았습니다.

정신적 측면에서는 물질만능주의를 가져와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갈등, 소외를 초래했습니다. 도시와 농촌 사이에도 소외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농촌인구가 줄어들고 농촌소득이 전체의 6% 미만으로 낮아진 현실, 도시 저소득층의 양산 등이 바로 산업화가 안겨준 부담들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않지요. 중소기업을 육성하자고 공감대를 형성해도 거대 기업의 영향력이 막대한 구조에서 중소기업을 키울 현실적 수단이 별로 없습니다. 또한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의 경제로 바꾸고, 규제를 완화하자고 했지만 실제 각 정부부처가 권한의 일실을 우려해 손을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절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한 번에 모든 적폐를 씻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잘못된 점이 교정될 수 있도록 준거틀을 새롭게 마련해야 합니다.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 공감대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그 틀을 위반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다루는게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방식이 합리주의이자, 법치주의를 정착시키는 첩경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토대위에서 국민운동이 전개돼야합니다. 가정 학교 사회 모두가 법을 지키고 부정부패를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노력이 전개돼야 합니다. 사정이나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차례 강조하지만 국민의 의식개혁이 있어야 나라가 다시 설 수 있습니다』

○옳은일 추진 경륜가 필요

-국민운동은 자칫 정권유지 수단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오해받을 일을 안하면 됩니다. 다소 오해가 있더라도 옳은 일이면 추진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민의를 수렴하기도 해야 하지만 민의를 끌고가기도 해야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가 이상의 경륜가, 즉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끌고갈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이 민의를 반영하는 역할도 해야하지만, 민주주의 시민의식, 국민 의식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향도역할도 해야 합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1면 머릿기사의 제목에 「갈등」 「대립」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언론도 화합 통합 단결을 이룰 수 있는 기사를 써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급변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우리가 취할 자세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세계는 지금 국제화 시대에서 세계화 시대로 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국제화는 자기 나라를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구조이고 세계화는 자기 국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구조입니다.

세계화시대에는 독식은 없고 공존공영 속에서 국가이익을 챙기는 지혜를 가져야합니다. 지도자들도 이런 변화를 읽고 지구촌 공동의 이익, 즉 환경 기아 빈곤 등의 문제해결에 기여하면서 국가이익을 도모하는 노련함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인터뷰=이영성 정치부 기자>

□약력

▲1922년 평북 창성군 청산면 출생

▲43년 만주 건국대 경제과

▲58년 미국 육군참모대학

▲60년 육사 교장

▲72년 미국 남가주대 정치학 박사

▲77년 외국어대 대학원장

▲78년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

▲80년 주영대사

▲88년 국무총리

▲9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저서 소련억제이론(영문) 한국통일문제(영문·공편) 등 다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