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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크루즈/얼음나라로의 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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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크루즈/얼음나라로의 귀족여행

입력
1997.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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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만나는 시다숲·설산… 고래들과 동행도/사파이어빛 빙하는 자연이 빚어낸 한폭의 그림원주민 말로 「거대한 땅」이라는 알래스카. 자연의 처녀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미국의 마지막 프론티어다. 여기에 발딛는 여정은 태고의 원천에서 겸허함을 깨닫는 탐구의 길이기도 했다.

서울을 떠나 비행한 지 9시간 남짓. 쪽빛 태평양을 띠처럼 두른 캐나다의 밴쿠버시 발렌타인부두에는 이번 여행의 길라잡이 크루즈여객선 「바다의 전설(Legend of the seas)」호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급호텔 설비를 완비한 7만톤급 호화여객선, 그녀의 품은 풍성한 여인처럼 넉넉했다. 긴 고둥소리를 뒤로 하며 배는 목적지인 알래스카를 향해 닻을 올렸다. 7박8일의 선상생활 중 할 일은 구속을 벗어난 자유의 몸을 파도에 띄우고 온갖 상념을 산뜻한 해풍에 날려 보내는 것 뿐. 갑판에 나와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본 시각은 하오 10시, 우리시간으로는 낮 2시로 한창 업무에 빠져들 시간이지만 그런 생각들은 이미 먼 옛이야기처럼 머리에서 떠나버렸다.

항해 이틀째. 24노트의 고속으로 물살을 가르던 배가 갑자기 주엔진을 멈추며 저속·저음운항에 들어갔다. 배 진행 방향에 나타난 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선장의 설명이었다. 멀리서 물기둥을 뿜어대던 고래 중 한 마리가 겁없이 우현으로 다가와 재롱을 피우자 승객들은 넋을 잃었다. 환경보전에 쏟는 인간의 작은 정성에 대한 자연스런 보답처럼 느껴졌다. 선상에서는 「혹고래다, 사향고래다!」며 자신의 지식을 한껏 뽐내는 즉석 토론도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승객들은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했다. 『고래 뱃속에 살고 있는 피노키오의 할아버지를 봤다』는 한 승객의 농담에 터져나온 웃음을 뒤로 하며 고래와 작별했다. 가족단위로 떼지어 이동하는 범고래(Killer whale)와 돌고래 등… 남극협약에 따른 포경금지조치로 그 수가 크게 늘어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일은 또하나의 기쁨이었다.

이처럼 야생생태의 동식물을 지척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알래스카 크루즈가 던지는 유혹이다. 멸종위기에 놓인 퍼핀새와 미국의 상징인 흰머리독수리, 새끼를 데리고 해변을 뒤적이는 곰, 물개 등은 나그네의 길동무가 된다. 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끝없이 이어지는 시다(Cedar)숲과 설산의 광대한 자연이 더욱 생생히 살아 있음을 실감케 한다. 갑판이 싫증이 나면 옥내수영장으로 옮겨 좋아하는 책 한 권에 칵테일 한 잔 곁들여 끝간데 없이 펼쳐진 툰드라의 장관을 즐기는 승객 틈에 끼어도 좋다.

밤새 꼬박 파도를 가른 배의 주위에는 온통 은색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떠다니는 유빙은 그림처럼 곱고 공기는 쨍하며 깨질 듯 차다. 목적지의 최북단인 글래시어 베이(Glacier Bay·빙하만)에 들어선 것이다. 단면을 드러낸 빙하는 의외로 사파이어빛. 어린시절 크레용으로 그리던 맑고 순수했던 하늘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영겁에 걸쳐 쌓인 눈이 거대한 압력을 이뤄 만들어낸 순수의 결정체가 부리는 자연의 마술이다. 조류에 맞닿아 유빙으로 조각나며 나는 소리는 천둥같다. 쩡하는 굉음과 함께 품어 두었던 태고의 숨소리도 풀려난다. 뿜어낸 산소는 싱그럽다 못해 탄산수처럼 아리다.

같은 빙하라도 색에 차이가 있다. 켜켜이 쌓여 있는 퇴적물, 과거의 시간조차 고스란히 얼어 있다. 빙하가 녹아드는 바닷물은 뿌연 젖빛이다. 바로 태고의 원천. 「빙하는 창조의 모태」라는 비유가 결코 과장이 아닐듯 싶다. 갑판을 가득 메운 승객들은 경탄과 환호도 잠시, 티 한점 없는 대자연 앞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숙연한 분위기에 젖어든다. 미국 워싱턴주에서 온 은퇴한 70대 노부부의 눈가에는 어느덧 이슬마저 맺혀 있다. 가식이 없는 대자연이 노부부로 하여금 인생역정을 뒤돌아 보게한 것은 아닌지. 과묵한 남편은 54년공군으로 근무하던 부산항을 잊지 않고 있었다.

1794년 첫 탐험대가 도달할 당시 빙하는 만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200여년이 지난 현재 100㎞ 길이의 협곡을 만들며 뒤로 물러나 있다. 지구 온도 변화에 따른 수축활동이다. 330만 에이커(약 39억6,000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만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환경보호운동은 유별스러울 정도다. 선내 방송이 주의를 당부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2명의 국립공원경찰이 배에 올라와 캠페인과 함께 환경감시활동을 한다. 배가 서서히 회전을 하며 방향을 360도 튼다. 이제 귀환길이다. 크루즈의 또 다른 재미인 기항지관광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만은 알고 갑시다/정장입어야 선장주최 만찬에 입장/지역마다 날씨 달라 여러옷 준비를/선박안은 미국령,미 비자 받아야

크루즈는 가장 호사스런 여행이다. 바다에 떠 있는 호텔에서 서비스를 받으며 눈 뜨면 경승지를 즐길 수 있다. 휴가철 짜증나는 교통체증, 숙박 걱정은 애초부터 없다. 7만톤급 「바다의 전설」호는 11층 데크에 승객 1,800명, 승무원 750명이 승선하며 롤링완충장치를 장착, 배멀미 우려도 없다.

크루즈 여행시 가장 유의할 사항은 짐꾸리기이다. 항해 중 선장이 주최하는 만찬이 두 차례 열리는데 턱시도 또는 정장차림이 요구된다. 턱시도는 선내 대여도 가능하지만 가격이 160달러로 비싸다. 굳이 형식을 싫어한다면 선내 뷔페에 가면 된다. 또 여러 곳을 옮겨 다니게 돼 각 지역의 날씨를 고려, 옷 준비를 해야 한다. 가령 알래스카의 경우 지금 여름이지만 빙하지대에서는 두툼한 파커가 필요하다. 때문에 어떤 여행보다도 짐이 두터워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걱정은 금물. 부두에 가면 호텔식으로 짐을 선실앞까지 날라다 준다. 올라타 한 번 풀고 내릴때 싸면 된다. 외국인은 크루즈 동안 한껏 맵시를 내는 여유를 즐긴다.

승선하면 우선 대피훈련이다. 선실배정이 끝나면 구명조끼를 입고 지정 데크에 모여 비상시 요령을 숙지한다. 선내에서는 현금 대신 자체 발급한 슈퍼차지카드를 이용한다. 크레딧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발급된다. 식사와 후식 등 기본을 제외한 주류 및 음료는 유료. 매일 배달되는 일정표를 자세히 알면 요긴하다. 포도주시음회 그림경매 등 프로그램이 날마다 다양하다. 카지노 수영장 마사지룸 미용실 등 부대시설이 완비돼 있고 연회장에서는 라스베이거스식 쇼무대가 펼쳐진다.

알래스카 크루즈의 출발지는 캐나다 밴쿠버지만 알래스카와 선내는 미국령이므로 미국비자가 필요하다. 자세한 문의는 한화관광(02―775―1580).<알래스카=윤석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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