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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항지마다 만난 따뜻한 사람… 정…/요트 세계일주 강동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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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항지마다 만난 따뜻한 사람… 정…/요트 세계일주 강동석씨

입력
1997.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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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음으로 방황할 때 물심양면 도와준 피지교민들/친척처럼 대해준 니사우인들/1년여간 서로 격려한 ‘경쟁자이자 동지’ 콜드웰/“돌아오겠다” 약속 꼭 지킬터7만여㎞의 뱃길을 돌아 「요트 단독 세계 일주」라는 쾌거를 이룬 강동석(28)씨는 8일부터 시작된 육지에서의 생활이 오히려 생경하다. 3년5개월만에 본격적으로 뭍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인듯 하다. 그런 탓인지 항해중에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기항지에서 만난 인정과 추억을 추려본다.<편집자 주>

끝없는 바다와 파도, 바람을 헤쳐 닿은 곳에는 인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반겼고, 특히 교민들의 환대와 격려는 새삼 조국애, 동포애를 일깨워주기도 했다.

강씨는 거센 풍랑을 만나 훼손된 요트의 보수와 식량 보충 등을 위해 10여 곳에서 기항했다. 또 떠나기전 풍속 풍향 등 기상예보를 점검, 가장 적절한 날씨에 항해를 계속하기 위해 기항지에서 한동안 머물기도 했다. 이때 세계각국의 요트인, 교민, 현지인 등과 만나 나눈 우정과 사랑은 강씨의 긴 여정에 큰 힘이 됐다.

강씨가 요트에 보관하고 있는 방명록은 그가 바다에서 겪은 세월과 풍파를 반영하듯 낡았다. 여기에는 항해중이나 기항지에서 만난 190여명의 기록이 담겨 있다. 이들은 서명과 함께 『해내고 말겠다는 정신, 본받겠습니다』 『부럽기만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꿈을 쫓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칼처럼 불처럼, 그런 영혼이어라』 『무사하기를』 등의 격려와 기원을 남겼다.

강씨는 항해 중에는 바다의 너그러움, 육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도움으로 대장정을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때 기항한 피지. 서서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교민들과 현지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지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전정묵 사장은 객실을 내주며 식사, 통화료 등 모두를 부담했다. 물론 아무런 대가도 원치 않았고 오직 「무사 항해」만을 격려했다.

또 인근 니사우 마을의 현지인들은 강씨를 마치 친척처럼 대해줬다. 그들은 백인들에게는 그다지 친밀감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강씨에게는 그들 특유의 술인 「카바」를 담궈 나눠마시거나 그들이 즐기는 럭비관전을 청하기도했다. 강씨는 이곳에서 음식과 성경을 가져다 주며 보살펴준 메리라는 여인에 대한 아련한 추억도 간직하고 있다.

브라이언 콜드웰은 인도양의 코코스아일랜드에서 조우, 지구일주를 이루는 곳이었던 하와이까지 1년여동안 서로 무선교신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거나 직접 만나 힘을 북돋운 동지이자 경쟁자였다. 강씨는 콜드웰이 파나마에서 200㎞ 떨어진 태평양의 무풍지대에 들어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고초를 겪을때 햄을 통해 탈출코스를 알려줘 그를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하와이에 거주하는 콜드웰은 강씨보다 다소 빠른 96년 9월29일 하와이에 입항, 당시로선 최연소인 20세로 단독요트세계일주기록을 세웠다. 그의 최연소기록은 최근 경신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셔스에서는 세상이 그렇게 넓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서 한국인을 보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강씨는 거리에서 우연히 충남대 해양학과의 박철 교수를 만났다. 그런데 박교수의 부인은 강씨의 사촌누이와 절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머나먼 이역땅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도 반가운데 그가 또 그다지 멀지 않은 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할때의 감정은 반가움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강씨는 이들 외에 항해 초기부터 도움을 준 LA교민 후원회와 친구 필립 림을 비롯, 이름은 일일이 거명하기 어렵지만 기항지마다 환대하고 격려한 교민들과 수많은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하고 있다. 고맙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강씨는 기항지를 떠날때면 언제나 『반드시 돌아 오겠다』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기약은 하지 못하지만 차마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정리=김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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