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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내다 보자/채서일 고려대 교수·경영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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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내다 보자/채서일 고려대 교수·경영학(한국논단)

입력
1997.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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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손익보다 소집단 이해 우선하는 100년전 소모적 정쟁/다시는 되풀이 말아야지난 19세기말 20세기초의 이른바 개화기 동안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 보면 안타까움과 민망함이 앞선다. 바깥세상이 얼마나 급변하는지, 다가오는 열강들의 속셈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정쟁에 갇혀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후 반백년 가까운 세월동안 우리가 남의 나라에게 겪어야 했던 고통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는 개화기로부터 100여년이 지나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많은 것이 변하였으나 또한 많은 것이 그대로이다. 그때 영토확장과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열강들은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며 자국의 패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태평양 주변만 놓고 보아도 미국을 견제하는 중국, 중국과 일본의 팽팽한 긴장관계,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러시아, 극동에서의 기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 등의 힘겨루기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 틈바구니에 우리가 있다.

이제 시각을 좁혀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자. 반쪽은 굶주림에 지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고, 아시아 4룡중 하나로 손꼽히며 승승장구하던 나머지 반쪽은 용이 되느냐, 이무기가 되느냐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여기에 복잡한 정치 상황이 맞물려 얽히면서 모두의 시선이 온통 국내 문제로만 향하고 있다. 정치 쟁점, 경제 현안이라는 발등의 불앞에 바깥 정세까지 신경 쓸 틈이 없어 보인다.

우리의 시각이 안으로만 향하는 것은 소집단 위주의 문화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소집단 위주의 문화는 넓은 시각으로 국가 전체의 상황을 살피기보다는 내 정당, 내 지역, 내 기업만의 이익에 연연하는 소집단 이기주의로 변질되기 쉽다. 소집단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집단속에 또 작은 집단이 생기고 그들간의 갈등으로 시각은 계속 내부에 붙잡히게 된다. 대외적인 대응에 있어서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신이 속한 소집단의 이익을 앞세울 수 밖에 없다.

다른 기업이 해외에서 피땀 흘려 개척한 시장을 중간에서 빼앗는다거나, 거의 성사시킨 계약을 제살 깎아먹기식의 조건으로 가로채버리는 일들도 전체보다 소집단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는 의식 때문에 일어난다. 최대의 국책사업인 고속전철사업에서도 프랑스에서 TGV 열차는 완성되었는데 우리의 공사기간이 지연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자 대국적인 차원의 문제해결보다 내부적인 변명과 무마에만 열심인 모습이다. 국가의 손익보다 일단 자신들 소집단의 책임모면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소집단을 우선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좀더 멀리 내다보는 국가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일개 기업을 운영하는 데도 경쟁기업들의 전략과 목적을 분석해내고 이에 대응하는 전사적이고 일관된 전략이 필요한 마당에 국가적인 차원에 있어서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현재 눈앞에 있는 빵을 놓고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밖으로 나가 빵의 크기를 늘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대국적인 차원에서 한반도 정세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세계 정세까지를 헤아리는 넓은 시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나 우리가 누구인가. 잿더미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계를 놀라게 한 기적의 주인공이다. 정치인들의 부패와 끊임없는 정쟁속에 멍들긴 했지만 국민들의 애국심은 그 어느때보다 절절하다. 미 GE사의 잭 웰치회장은 『세계 각국을 돌아다녀 봤지만 국민 정부 기업 할 것 없이 나라의 운명에 그토록 신경쓰는 곳은 한국뿐』이라고 하며 『한국인은 21세기의 징기스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남의 말 한마디에 좋아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진 저력의 일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한반도는 비좁은 무대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눈을 들어 밖을 보아야 한다. 100여년전 눈과 귀를 막았던 소모적인 정쟁의 회오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6년의 세월을 대가로 얻은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는한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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