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의사들은 대체로 통풍을 다른 관절염과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문헌에는 통풍의 특성을 인식했다는 증거가 있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의 저자들은 급성통풍과 급성관절염을 서로 다른 병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통풍을 『관절에 생기는 병가운데 가장 심한 것으로, 오래 지속되며 특히 엄지발가락에 통증이 고착된다』고 했다.히포크라테스 학파는 다른 병들과 마찬가지로 통풍 역시 체액의 균형이 깨져 생긴다고 여겼다. 따라서 최상의 치료법은 주로 식이요법을 통해 깨진 균형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식이요법으로 잘 낫지 않는 경우 설사를 시키거나 때로는 사혈(치료목적으로 피를 뽑아냄)을 했다. 관절에 심한 통증이 오래 지속될 때는 아마를 태워 해당 관절 위의 정맥을 지졌다. 또 성기능과 통풍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 거세를 권하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18세기말까지 2,000여년동안 통풍의 발병원인이나 치료법에 대한 생각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16세기에 화학물질이 통풍의 원인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전통적인 체액설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굳이 다른 점이라면 시대가 지날수록 더욱 강력한 설사제가 쓰인 정도였다.
류머티스 관절염과 통풍을 혼동하는 등 질병의 감별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가지 병이 다르다는 사실은 17세기에 와서야 시드넘 등의 면밀한 임상관찰을 통해 밝혀졌다.<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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