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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아기 키우기/이훈구 연세대 교수·심리학(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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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아기 키우기/이훈구 연세대 교수·심리학(전문가 진단)

입력
1997.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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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고치라는 사생아는 ‘양탈 쓴 늑대’/학습 집중방해·기계에의 종속만 초래수년 전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다마고치 전자게임이 드디어 한국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수업 중에도 다마고치에 심취하기 때문에 이것을 지참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고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다마고치란 회중시계 크기의 아주 작은 휴대용 전자게임기로 간단히 말하면 전자 아기를 키우는 프로그램이다. 다마고치에는 기르는 동물의 종류에 따라 여러가지로 병아리 다마고치, 공룡 다마고치가 있다.

사용자가 시간을 맞추어 놓으면 그 순간부터 달걀 또는 공룡알이 부화하기 시작하여 정확히 5분후에 새끼가 탄생한다. 그때부터 사용자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고된 역할을 떠맡는다. 즉 사용자는 전자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치료해 주며 배변 청소는 물론 아기와 같이 놀아주어야 한다. 사용자는 아기의 성격지도도 하는데 아기가 배고프지도 않고 배변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삐삐 신호를 보내면 처벌할 수 있다.

전자 아기는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적으로 성장해 가는데(약 1개월 정도) 사용자가 성장 속도를 체크할 수 있다. 사용자가 아기를 잘못 키워 너무 많이 먹이거나 병이 났는데도 치료를 게을리 하면 전자아기는 도중에 사망한다.

다마고치 게임이 기존 전자게임과 다른 점은 사용자가 게임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 아기가 주도권을 잡는데 있다. 전자 아기는 삐삐를 통해 엄마를 호출하며 그의 시중을 요청한다. 사용자는 전자 아기에 대해 깊은 애정이 생기며 마치 자기가 엄마가 된 느낌을 갖는다.

일반인은 다마고치가 닌텐도와는 달리 별로 문제가 없는 게임기구라고 착각하기 쉽다. 즉 닌텐도에는 난폭성과 선정성이 개재되어 있는데 비해 다마고치는 이러한 부작용은 없고 오히려 자녀 양육이란 훌륭한 정서교육을 시키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다마고치는 바로 양의 탈을 쓴 늑대이다. 왜 그런가?

우리는 산모가 얼마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한 지를 잘 알고 있다. 산모는 끊임없이 칭얼대는 유아의 모든 시중을 들어주어야 하며 전 신경을 유아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다마고치 게임을 하는 청소년은 산모가 처한 상황에 가로놓이게 된다. 즉 다마고치 보모는 다른 일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오로지 전자 아기에게만 몸과 마음을 바친다.

다마고치가 아동은 물론 청소년에게까지 크게 각광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청소년의 동물에 대한 애정, 그리고 부모역할에 대한 잠재적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아동은 천성적으로 동물을 사랑하고 부모가 되고픈 잠재적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파트문화는 청소년의 동물에 대한 양육 욕망을 좌절시킬 뿐이다.

다마고치의 폭발적인 인기는 계속 유지될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값이 저렴한 편(2만5,000원)이고 휴대가 간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나 가정에서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다마고치는 인간으로 하여금 전자게임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게 한 최초의 전자게임이라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심각한 우려를 하게 만든다. 즉 닌텐도는 우리가 즐기기 위해서 하지만, 다마고치는 전자아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몰두한다.

다마고치가 갖는 두번째 문제는 다마고치가 우리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산업사회에서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는 것을 우려했지만 진짜 본격적인 기계에의 종속은 다마고치로부터 시작된다. 부모는 자녀가 더 이상 다마고치라는 사생아에 얽매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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