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없이 발휘된 이야기꾼의 솜씨김주영의 「홍어」(「작가세계」 여름호)는 이야기꾼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역작이다. 훌륭한 이야기꾼이 으레 그렇듯이 작가는 무엇인가 운명적인 것이 출현한 경이로운 과거의 어느 시간을 이야기한다. 「홍어」에서 그것은 난데없이 폭설이 내려 산간마을을 설국으로 변모시킨 어느해 겨울이다. 일상의 리듬을 정지시키고 살아온 자취들을 뒤덮으며 펼쳐진 순백의 세계는 운명이 그 천연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알맞지 않은가.
「홍어」는 폭설이 내린 아침, 열네 살 소년인 작중화자의 집 부엌에서 한 낯선 처녀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간밤에 추위를 피해 숨어든 이름도 없는 거지다. 남편이 추문을 남기고 동네를 떠난 까닭에 스스로 고립되어 있다시피 하며 삯바느질로 살아온 어머니는 그녀를 받아들여 일손을 거들게 한다. 그녀의 인상은 작중화자에게 처음부터 범상치 않다. 부엌에 걸려 있었던, 아버지의 상징과 같은 말린 홍어를 먹어치웠다는 의심을 샀고, 또한 아버지와 비슷하게 홍어의 살거죽을 연상시키는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와 밀접한 연상관계를 가지고 있다. 작중화자의 관찰 아래 그녀가 드러내는 것은 안주를 모르는 떠돌이의 삶이다. 처음에는 몽유병 증세로, 나중에는 바람기로 표현되는 그녀의 신명은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랄과는 확실히 대조적이다. 그녀는 마침내 마을에서 자취를 감춘다.
이러한 떠돌이 처녀의 출몰은 성년의 문턱에 들어선 작중화자에게 어떤 정신적 성장의 계기를 열어준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내부에 일기 시작한 표박에의 욕망을 깨닫는 계기일 것이다. 작중화자의 정황에서 보면 그 욕망은 그의 외롭고 황량한 환경에 대한 은밀한 반감에서 자라나고 있으나, 어머니의 고난에 대한 공감과 길항하여 시인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떠돌이 처녀를 만남으로써 그는 표박의 매혹을 배우게 된다. 「홍어」는 이렇게 아버지 없는 집에 거지 처녀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사건을 줄거리로 삼아 귀속에서 자유로 그 중점을 이동하는 인간성장의 심리를 제시한다. 작품에 나오는 특수한 사연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그것을 넘어 삶의 섭리를 향한 알레고리적 해석의 여지를 활짝 열어주고 있다.<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동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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