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거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대선주자들의 TV토론이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속에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 간선제에 저항하는 국민이 직선제를 쟁취하고 1987년 극적으로 치렀던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자기나라의 민주화를 갈망하던 아시아인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이제 우리는 대선주자 TV토론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계속 전진해 왔고, 여전히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물론 우리의 눈으로 보면 문제도 많다. 총재의 후계자 지명에 절대복종하던 여당에서 무려 8명의 주자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는 것은 여당의 변화를 실감케하는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주자 난립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속셈으로 경쟁에 뛰어들어 TV토론 등에서 유력한 주자들과(심지어는 야당의 정식후보와) 같은 조건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된다.
그들은 대선주자라는 이름아래 다른 선거운동을 하거나, 누구와 연합하여 지분을 챙기는게 유리할까 라는 저울질에 바쁘다. 2000년대의 대통령 선거를 향해 연습을 하고 있다면 그나마 순수한 편이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끝나기도 전에 신문·방송들이 대선주자 초청 토론을 너무 일찍 시작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여당주자들의 경쟁이 선명하게 압축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누구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설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다른 목적으로 경선을 이용하고, 언론매체들이 알면서 이용당하는 것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대의원들, 앞으로 대의원이 될 사람들이 TV토론을 열심히 보면서 각 주자들의 능력과 인품을 비교검토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에 대한 장악력을 잃고, 대선주자들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난파선처럼 흔들리고 있는 신한국당에서 국민이 희망을 걸 수 있는 부분은 대의원들의 변화다. 이제 신한국당 대의원들은 당총재나 지구당 위원장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르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나라의 바른 선거를 주도하는 선도자가 돼야 한다. 지역감정이나 학연 등 작은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말고 나라 전체를 보면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최선의 인물을 후보로 선출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참담하다. 전직대통령 두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고, 개혁을 외치던 현직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를 잃은 채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항상 기회라고 한다. 당총재의 장악에서 벗어남으로써, 당이 뿌리째 흔들림으로써, 신한국당 대의원들은 비로소 당의 주인이 될 기회를 얻게 됐다.
일부 대선주자들은 각 지구당에 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돌리고, 일부 위원장과 대의원들은 지지의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 만일 김대통령이 특정후보를 지원할 생각이 있다면 공개적인 지지표명이 아니라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유언비어도 들려 온다. 대의원들의 상당수는 위원장들의 일방적인 지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주자들이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정치인들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는 절망에 다시 빠지게 된다. 부정한 돈 때문에 이 정권이 신뢰를 잃고 주저 앉았는데, 여전히 돈으로 혼탁한 경선을 치른다면 그 무서운 부패불감증을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겠는가. 부패로 휘청거리면서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형식에 있어서는 앞을 향해 달려왔다. 이제 형식뿐 아니라 내용을 바꿔야 할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여당 대의원들이다. 그들이 깨끗하고 공정하고 멋진 경선을 치른다면 이미 선거혁명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신한국당 대의원들이 높은 자부심으로 선거혁명의 첫장을 열기를, 좌초한 이 정권의 개혁을 대의원들의 힘으로 다시 세우겠다는 사명감을 갖기를, 온 국민이 기대하고 있다. 7월21일 전당대회에서 1만2,000여명의 대의원들은 명실상부한 당의 주인이 돼야 한다.<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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