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죽 방구노루잠 민둘레꽃땅살 등 주요시집 1,000여권서 표제어 뽑아 풀이「서녘에서 부러오는 바람 속에는/ 오갈피 상나무와/ 개가죽 방구와/ 나의 여자의 열두발 상무상무」. 서정주의 「서풍부」 첫 연이다. 상나무(향나무)까지는 알 법한데, 「개가죽 방구」 「상무상무」로 가면 전문가라도 의미가 막힌다. 이처럼 우리 시어 중에는 일상어의 차원을 떠난 언어들이 무수히 많다.
김재홍(50) 경희대 교수가 펴 낸 「한국 현대시 시어사전」(고려대출판부간)은 이런 개인시어(조어), 시인이 살려 쓴 고어, 방언, 은어, 속어, 상징시어 1만2,000여 단어를 표제어로 한 사전이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이 부문에서는 유례가 없는 작업이다. 「해저문 벌판에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 이 시를 쓴다」(한용운 「님의 침묵」)의 「기루어」란 말의 뜻이 궁금했던 김교수는 만해 시어 연구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김소월 서정주 백석 이용악 등의 시어로 의문은 더해갔고 고은 김지하 신경림을 거쳐 박태일 오봉옥에 이르는 시인의 언어에까지, 20년 탐구의 결과를 사전으로 엮었다. 1921년부터 95년까지 간행된 1만5,000여권의 시집 중 중요시집 1,000여권에서 표제어를 뽑았다. 생존시인 500여명에게는 조어의 종류와 의미를 묻는 설문작업을 했고 토속어의 경우 현지조사도 병행했다.
표제어마다 시 원문과 출전이 실려 있고, 말미에는 연도별로 간행된 국내시집의 전체목록도 수록했다. 「잠」의 경우 나비잠 노루잠 꽃잠 부엉이잠 말뚝잠 검불잠 쪽잠 초벌잠 등의 용례가 실려있는 등, 사전을 들출 때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커진다.
『서정주는 민들레꽃을 민둘레꽃 미움둘레 멈둘레꽃 머슴둘레꽃으로 변형해 사용했고, 고은은 「바람이 언니언니 불어와」라는 표현을 만들었으며, 젊은 시인 오봉옥의 경우도 흙을 「땅살」이란 말로 표현했다』고 예를 든 김교수는 『우리말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확장하는 시인들의 이런 창조적 노력을 통해 민족어는 예술어로 상승하게 된다』고 말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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