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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과 질시’ 영재부모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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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과 질시’ 영재부모의 고민

입력
1997.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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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호기심·극단적 집중력·주의산만/또래친구·학교교육에 흥미잃은 아이들/남들과 어울려 정상적으로 클 수 있을지…초등학교 3학년인 승기(10·가명·서울 노원구 공릉동)는 영재교육기관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지 1년6개월 됐다. 하지만 흔히 영재아들이 보이는 높은 학업성적과 어른스러움, 똘똘한 눈망울과는 거리가 멀다. 성적은 상위권이지만 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는 아니다.

어디로 튈 지 모를 호기심,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엉뚱한 질문, 가끔 엄마를 당황하게 만드는 벅찬 활동량, 관심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주위를 모조리 잊고 몰두하는 집중력 등이 승기를 「범상치 않은」 아이로 보이게 할 뿐이다.

승기는 학교에서 공부시간에 툭하면 책상 위에 엎드려 잤다. 선생님은 『수업 분위기를 망친다』고 책망했다. 아이답지 않은 논리와 집요함 때문에 친구들로부터는 『네가 선생님이냐』라는 핀잔과 따돌림도 받았다.

보다 못한 엄마(40)가 승기를 데리고 간 곳은 소아정신과 병원. 의사는 대뜸 행동과잉증이라며 약물치료를 권하고 한편으로 지능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아이에게 약물치료라니…』 절망 속에 받은 지능검사. 그러나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승기의 지능지수가 150에 달했다. 보통 학교에서 실시하는 집단검사로는 165이상에 달하는 높은 수치였다.

약물치료를 미루고 긴가민가하며 영재교육기관을 찾았다. 첫 수업을 받은 승기의 표정에는 「뭔가 뻥 뚫린 것 같은」 후련함이 나타났다. 한주일에 한번이라도 호기심을 표출시킬 기회가 생긴 승기의 얼굴은 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눈에 띄게 정서적으로 안정됐고, 학교생활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흔히 『영재는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속사정은 오히려 딱한 경우가 많다. 남보다 월등한 재능을 가진 영재들의 삶은 성취보다는 고난이 따르고, 영재를 자식으로 둔 부모들은 자랑스러움보다 근심이 앞선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이질감과 남보다 우수하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대부분의 영재들은 심리·정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영재=천재」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시선도 무겁다. 많은 영재아들의 학업성적은 의외로 그리 좋지 않다. 영재교육을 시킨다고 하면, 극성부모로 매도당하기 일쑤지만 실은 『우리 아이를 남보다 똑똑하게 키우겠다』는 의욕보다는 『남들과 어울리며 정상적으로 클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부모가 더 많다.

청주에 사는 영현이(5·여·가명)는 매주 엄마와 함께 영재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영현이의 지능지수는 전체의 0.1% 내에 드는 최고 수준. 하지만 영문을 줄줄 읽거나 숫자계산을 척척 해내는 신동은 아니다. 웬만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깨치는 한글도 아직 못읽는다. 영현이는 활달한 성격인데도 유치원에서 친구를 잘 못 사귀고,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초등학생 등과 대화하기를 즐겼다. 영현이 엄마(34)는 『영현이가 앞으로 학교와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 지 매우 걱정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영재교육전문가들은 『우리의 교육현실을 볼때 지적 능력이 매우 뛰어난 아이들은 사고력과 사회성을 균형있게 키우는 데 매우 어려움이 많다』며 『특히 창의성이나 사고유연성이 뛰어난 아이들은 「똑똑한 아이」보다는 「이상한 아이」로 분류돼 고민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김경화 기자>

◎천재그룹 한국멘사 회원 지형범씨/‘별종’끼리 어울리니 맘이 편해요/참기힘든 호기심 억누르며 ‘평범’ 가장하는 사람들 모여 관심사 정보교환·취미활동

LED(발광다이오드) 관련 벤처기업인 지고(GIGO) 정보실장 지형범(38)씨. 생소한 전문 기술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들 딸을 하나씩 둔 평범한 가장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중소기업 실장말고도 또 하나의 직함이 있다. 「천재그룹」으로 통하는 한국 멘사(MENSA) 정회원이자 테스트분과 자원봉사자. 지씨는 96년 10월 제2회 멘사 테스트에 응시, 멘사 자체 기준 지능지수(IQ) 160이라는 썩 괜찮은 성적으로 멘사 회원이 됐다.

그의 대학 때 전공은 수학, 서울대 77학번이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생물학을 전공했고, 대학원 중퇴 후 사회에 나와서는 죽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일해왔다. 지씨는 『워낙 호기심이 많았던 데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줄 모르는 기질』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대기업에 취직하고,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관심 분야에 빠져들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쉽게 생기질 않았다. 얘기에 푹 빠져들 친구·동료도 만나기 힘들었다. 스스로도 공연히 튀어 보이는 말이나 행동은 되도록 삼가해 왔다.

그런 그에게 멘사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다른 생각, 색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교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겨웠다. 500여명의 멘사 회원중 「노장」축에 속하면서도 기꺼이 바쁜 시간을 쪼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멘사를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만의 모임으로 보지는 말아달라』고 말한다. 그저 좀더 강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공통 관심사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소모임을 갖는 순수한 동호회 수준의 모임이라는 것. 실제로 IQ 120 정도면 능히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 뿐더러, 회원들의 면면도 대학생에서 자영업자까지 다양하다. 소모임들도 미술, 스키, 문화비평 등 일반적 소모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직은 독립 사무실이나 상근자 하나 없는 시작 단계지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나름대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지씨의 바램이다. 『한 예로 국제적인 멘사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우리 전통과 문화를 널리 알리는 새로운 문화채널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아직은 생각일 뿐, 그저 자기의 색다른 아이디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별종」 취급을 받곤 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황동일 기자>

◎전문가 진단/조석희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 연구위원/‘잘났기 때문에 낙오자’ 막아야/‘나이는 5세인데 지능은 10세 수준’/심신불균형 바로잡을 교육 필요

타고 난 지적능력이 뛰어나면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기는 커녕 도리어 학습문제아로 낙인 찍히는 아이들이 허다하다. 우리나라 학생 100만명의 연령당 상위 1%에 해당하는 최소 1만명 정도가 이런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한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우리 교육제도가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난 아이들의 고급사고 기능과 창의성을 계발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잘났기」때문에 낙오자를 만들 소지가 크게 돼 있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영재에게는 그에 걸맞은 교육을, 일반 아동에게는 그 수준에 맞는 교육을 실시해 각자 타고난 소질과 능력을 최대한 계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영재교육이 필요한 것은 비단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영재교육은 지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적 발달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영재들은 일반 아동과는 다른 성격적 특성과 욕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그에 적합한 교육환경과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많은 영재들은 지적·신체적 발달, 지적·정서적 발달 사이에 불균형이 있어 일반적 교육내용과 방법은 이들에게 적합한 교육환경이 될 수 없다.

신체적으로는 17세이지만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5세 수준의 정신박약아를 위해서 특별교육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10세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진 5세의 영재에게는 특별한 교육이 요구된다. 지능은 10세 어린이의 그것을 넘지만 연필을 잡는 신체 발달 수준은 역시 5세아이이기 때문이다. 이는 영재의 인권보호 차원에서도 고려돼야 한다.

영재교육은 개별화교육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영재들 간의 개인차는 일반 아동간에 보이는 개인차보다 크다.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우리는 경제적·편의상의 이유로 해서 같다고 취급한다. 그리고 같은 교육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가르친다. 여기에는 극성스런 학부모들의 특혜시비를 피하려는 교육당국의 적당주의도 한 몫 한다. 그러나 만약 이 아이들이 각자의 지식수준, 사고방식, 관심에 걸맞는 교육을 받는다면 누구나 잠재력을 최대로 계발시킬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영국 독일 이스라엘 프랑스 등 구미 여러나라,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 여러나라는 영재학교, 영재학급, 월반, 조기진학, 조기졸업, 지역별 공동 영재학교, 영재교육센터, 사사제도 등을 동원해 특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개성화, 다양화, 정보화라는 미래의 시대적 특징을 고려해 학생들이 갖고 있는 여러 분야의 다양한 재능을 각기 최대로 계발시켜 창의적 생산적 고급인력을 배출해내는 데 노력을 쏟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는 능력은 학생들이 학습의 주제, 내용,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개방적인 교육체제 속에서 활동과 사고과정 및 탐구과정을 중시할 때 길러질 수 있다.

질문을 참아야 하기 보다는 어떤 질문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을 때, 교과서와 공책, 시험지만을 가지고 공부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사물을 대상으로 탐구해 볼 수 있을 때,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 수준을 고려한 교육이 가능할 때 아이들의 창의성은 계발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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