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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몽의 혁명가/이종수 국제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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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몽의 혁명가/이종수 국제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7.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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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일본 적군파 5명에 대한 1차 재판이 열렸다. 70년대 아시아와 유럽에서 테러를 일삼았던 여자 1명을 포함한 이들 5명은 그러나 이날 테러와는 전혀 무관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테러리스트, 특히 일본 적군파에 우호적이었던 레바논 정부가 2월 이들을 여권위조와 불법체류 등의 혐의로 체포했기 때문이다.이들은 재판내내 시오니즘과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자신들을 법정에 세우는 것은 은혜를 저버린 배신행위라며 레바논 정부를 비난했다. 특히 72년 이스라엘 로드 공항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26명을 숨지게 한 오카모토 고조(강본공삼·49)는 『로드 작전을 주도한 나는 아랍 국가 어디서에든 살 자격이 있다』고 항변했다. 테러의 대가로 13년동안 타국 이스라엘 감옥에서 청춘을 보낸 그는 자신을 여전히 영웅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날 CNN 등 외국 언론에 비친 오카모토는 사상으로 무장된 일본 명문대 출신의 혁명가 이미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횡설수설하는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여권을 직접 위조한 적이 없다는 그는 위조된 여권을 사용하는 것도 죄가 되느냐고 따지는가 하면,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랍의 영웅이 아랍 국가에서 그런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레바논이 자신들을 일본 정부에 강제로 인도할 경우 레바논 감옥에서 집단자살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의 이날 모습은 투쟁 일변도의 학생운동을 벌이다 국민의 지지를 잃자 국제 테러단으로 변신한 적군파의 말로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적군파는 이제 마지막 은신처라고 믿은 아랍 국가에서마저 외면받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오카모토는 모든 질문을 로드 사건과 연관지으려 했다. 그는 아직도 과거에 매몰된 정신분열증 환자같았다』는 한 방청객의 증언에는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혁명가」에 대한 연민이 짙게 배어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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