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입시에 영재교육 실종/지식 고부가가치 시대를 맞아/‘영재 1명이 수만명 먹여살린다’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한 편에서 얻는 이익이 우리가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는 보고가 있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하나로 세계를 지배한다. 만약 한국의 영재가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영재들은 고도의 정보가치 창출 가능성을 높여 주는 인적자원이다. 최첨단 정보사회로 접어드는 현대에서 영재의 부가가치는 그래서 더욱 높다.
영재를 키우고 잘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몇몇의 사설 영재교육기관이 영재교육의 전부이다.
3일 하오 5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기독교방송 영재교육학술원(원장 문광일) 5층 언어재능반 교실. 초등학교 5학년생 3명이 교사 1명과 둘러 앉았다.
『내 스크립트에는 잔잔한 배경 음악이 어울려요』
『콘덴스마이크로폰은 작게 녹음되니까 목소리를 크게 해야겠어요』
어린이들은 직접 만든 슬라이드 필름통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은 스스로 쓴 대사를 녹음하는 날.
먼저 녹음에 나선 어린이가 또렷한 목소리로 읽어내렸다. 주제는 「자연보호」. 『여기는 청계산 숲속입니다. 나무가 우거진 모습이 시원해 보입니다…』 쓰레기가 넘쳐흐른 공원 앞 쓰레기통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서울에서만 하루에 1만5,397톤의 쓰레기가 나온다고 하니 여간 큰 문제가 아닙니다…』 어린이들은 직접 제작한 슬라이드 필름을 대사와 함께 시연할 다음주 프로젝트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기독교방송 영재교육학술원(02―579―4088)에서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영재아는 400여명. 만 4세 전후 유아에서부터 중학생까지 연령층은 다양하다. 모두 IQ(지능지수)가 상위 3%(130 내외)에 드는 우수지능아들이다. IQ 외에도 창의성이나 문제해결력, 집착력 테스트 등으로 영재아를 분류한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일주일에 1∼3시간씩 영재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지도를 받는다. 교육과정은 학교 공부와 직접 연관이 없다. 과학 수학 언어 등으로 영역이 나뉘어져 있으나 지식 전달보다는 창의력 사고력 등 지적 능력을 계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영재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는 김연구소( 소장 김명환, 02―3471―8786)에서도 현재 100여명의 아동이 교육을 받고 있다. 지능검사와 창의성, 과제집착력 등이 높은 아동이 영재아로 판별된다. 지적능력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중시해 IQ 상위 10% 이내(125 내외)선까지 기회를 주고 있다.
이같은 영재 교육은 특별하고 선택받은 경우이다. 일반 학교에서 영재교육이란 없으며 생각할 수도 없다. 교실에선 학생들의 개인차가 무시되는 획일적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현행 교육체계는 영재들의 빠른 학습속도와 폭넓은 흥미영역을 만족시킬 수 없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오히려 이들을 퇴보시킨다.
외국이 70년대 이후 영재교육에 열을 올린데 반해 우리는 평준화교육으로 돌아섰다. 그나마 과학영재, 언어영재들을 키우겠다는 야심으로 출발했던 과학고, 외국어고 체제는 「일류대 진학 명문고」만을 만들어냈다. 영재교육의 관점에서 분명한 「실패작」이다.
『저학년에서 영재성을 보이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평범해지는 경향이 있다. 학교와 학부모가 입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과학고 한 교사의 말이다.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개별 학생들의 특성에 적절한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능력은 없다. 예산을 핑계댈 수도 있지만 획일화, 표준화를 지향해 온 교육가치관에 근본적인 수정이 없는 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부모들의 영재교육에 대한 입장도 이중적이다. 자기의 아이가 영재교육의 대상자가 되지 못하면 영재교육은 공격과 파괴의 대상일 뿐이다. 정부도 이 같은 풍토에서 적극적일 수 없다. 정부차원의 영재교육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영재학회회장 이상희(신한국당) 의원은 『잘 교육시킨 영재 1명이 수만명을 먹여살릴 수 있다』며 『21세기에서 화려하게 생존하려면 하루빨리 영재교육을 위한 법적·제도적인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조재우·김경화 기자>조재우·김경화>
◎누가 천재인가/단순한 ‘지능지수’만 아니라 창의성·과제집착력 겸비해야/학계 통일개념 없어 과거 ‘선천성’ 중시에서 ‘가능성’으로 무게 이동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천재), 뛰어난 재능이나 지능을 가진 사람(영재), 재주가 빼어난 사람 (수재).
사전적인 의미에서 천재, 영재, 수재는 모두 재주가 뛰(빼)어난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다만 천재는 「태어날 때부터」라는 수식이 붙어 선천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이들 중 천재가 가장 우수하다는 느낌을 주나 이 역시 이견이 많다.
학계에서는 영재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영재에 대한 통일된 개념은 아직 없다. 천재라는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학계가 말하는 영재는 능력을 개발중이거나 교육중에 있는, 뛰어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이미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을 영재라고 하지는 않는다. 영재과학자, 영재음악가라는 말은 어색하고, 천재과학자 천재음악가 등은 그럴싸하다.
영재에 대한 개념 정의는 시대별, 국가별, 학자별로 각각 다르고 영재의 출현율을 전체 인원의 몇%로 정하는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또 지능지수 측정 방법도 다양하다.
80년대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비네」방식으로 지능지수(IQ)를 측정했다. 이 방식으로는 최고지수가 180이며 지능지수 125이상(동일연령내 전체인구 5%)은 우수, 140이상(1%)은 영재, 170이상(1만분의 1) 또는 180(10만분의 1)이상을 천재, 초영재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도입된 「웨츨러 방식」에서는 최고지수가 160으로 낮아졌고 지능지수 130은 동일연령내 전체인구의 상위 1.2%에 해당한다. 따라서 비네방식의 측정때 보다는 지수가 적게 나올 수 있다.
지능지수가 높으면 수와 언어에 관련된 학교공부를 잘 할 가능성이 높지만 창의력, 과제 집착력도 높은 것인 지는 알 수 없다. 지능검사의 한계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지능지수 외에도 창의성, 과제집착력 등도 함께 파악하려는 시도가 많다.
한국교육개발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상위 1%정도를 영재로 파악했으나 최근에는 상위 15∼20% 수준까지 넓혀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재가 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이다.
천재나 영재는 태어날 수도 있고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재인가 아닌가」를 가리는 것보다 「어떻게 영재로 만들 것인가」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조재우 기자>조재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