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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음악회’/사이비에 보내는 비웃음?(음악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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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음악회’/사이비에 보내는 비웃음?(음악평)

입력
1997.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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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항상 알 수가 없다. 연주는 같은 곡이라도 누가 언제 어떤 상태에서 하느냐에 따라 늘 다르고 청중의 반응이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이 3일 예술의전당에서 마련한 「P.D.Q(사이비 바로크) 바흐의 못말리는 음악회」는 특히 그러했다. 점잔빼지 말고, 엄숙함 따위는 치워버리고 깔깔 웃자고 연 음악회였다. 실제로 폭소가 터져나왔다.첫 곡 금관5중주 「보통감기를 위한 팡파르」에서 연주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등장해 「팽―」하고 코를 풀면서 개그가 시작됐다. 화려한 금관5중주는 한 번씩 「뿜, 뿜」 기침을 하더니 재채기로 끝났다. 이어 「피콜로와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피콜라」. 악보를 넘기는 넘돌이는 하프시코드 연주자보다 더 폼을 잡았다. 피콜로를 불던 연주자가 갑자기 악기를 귀에 대고 휘파람으로 연주하자 P.D.Q. 바흐(개그맨 이진수가 분장)는 손가락을 뱅뱅 돌리며 「돌았군」이란 표정을 지었다. 고무호스 달린 깔때기에 들이부은 술의 꼬르륵 소리를 반주 삼아 노래하던 메조소프라노(이춘혜)는 「전국총기협회에 가입했거든」이라는 가사에 이르자 치마를 걷어올리고 허벅지 밴드에서 장난감 권총을 꺼내 쏘았다. 불편을 참고 한 대의 비올라를 쇠톱과 낚싯줄까지 써서 다퉈가며 켜던 두 명의 연주자는 결국 활을 휘둘러 칼싸움을 하면서 퇴장했다.

「바겐 카운터 테너를 위한 바위 위의 목동」에서 테너 강무림은 양의 숫자를 세다가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다. 슈베르트의 「바위 위의 목동」은 물론 양의 숫자를 세지 않는다. 바흐의 「음악에의 헌정」을 비튼 「음악에의 희생」은 연주자들이 바닥에 펼쳐진 악보를 따라 움직이며 연주했다. 첫 곡 「보통감기를 위한 팡파르」도 코플랜드의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에 빗댄 익살이다. 이날 연주곡은 모두 미국작곡가 피터 쉬클리의 작품이다.

P.D.Q. 바흐는 가상인물로, 가짜음악의 득세를 조롱한다. 박장대소를 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왜 이러한 음악적 개그가 필요할까. 이날의 웃음은 기술자 또는 레슨업자에 가까운 연주자, 교양을 증명하는 장식물로 음악회를 찾는 청중이 적잖은 우리 음악계의 사이비현상에 보내는 비웃음은 아닐까.<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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