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은 왜 있는가. 현충일이 공휴일인 까닭은 무엇인가. 젊은 내외가 자가용에 아이들을 태우고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라고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젊은 남학생이 예쁜 여학생을 옆자리에 앉히고 드라이브를 즐기며 청춘을 구가하라고 현충일이 공휴일로 제정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국립묘지에는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는 일에 공이 크다고 인정되는 역대 대통령을 비롯하여 독립투사, 애국지사들―이른바 국가 유공자들이 대개 전망이 좋은 묘역에 묻혀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공로에 대하여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립묘지에 당당히 묻혀 있는 이들은 뭐니뭐니 해도 전쟁터에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젊은 용사들이다. 그들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현충일이 있고 국립묘지가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을 모조리 그곳에 묻어야 할 까닭은 없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링컨 대통령은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혀 있고 그란트 대통령의 시신은 뉴욕 시내 허드슨강이 내려다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에 안장되어 있다. 앞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도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히게 되는 것일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린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할 말이 없다. 다만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들 덕분에 우리가 오늘 이렇게 세끼 밥을 먹으며 편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망한지 이미 오래일 것이다.
국립묘지에 가서 『죽어서 말한다』는 국군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고는 이 나라의 경제를 말하지 말라. 이 나라의 정치를 운운하지 말라. 정태수야 들으라, 김현철아 들으라, 김기섭아 들으라, 박태중아 들으라. 『자네들 그짓 하라고 우리가 목숨을 버린 것은 아니다』라는 저 목소리를!
인천 북구청에 근무하면서 작당하여 가짜 영수증을 써주고 100억 이상을 가로챈 세무공무원, 법무사, 세무사여 들으라. 죽어서 말하는 국군의 저 목소리를 들으라. 용인지, 미꾸라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건 청와대의 주인이 한번 되어보겠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대통령 지망생들아 들으라, 죽어서 말하는 저 국군의 목소리를! 『당신들 대통령 되겠다고 싸움질하라고 우리가 죽은 것은 아니오』
현충일 그날, 죽어서 말하는 국군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임진왜란에 왜 우리는 당해야만 했는가. 당시의 조정이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외면하고 터무니없는 태평성대를 노래했기 때문이 아닌가. 1950년 6월25일 새벽, 왜 인민군은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감행했는가. 대한민국이 국방의 아무런 준비도 없으면서 명분에 밀려 미군을 몽땅 철수하게 하고 북에 감금되어 있던 조만식선생과 남에 갇혀있던 유명한 공산당원 이주하, 김삼룡을 38선 어디에서 맞바꾸자는 노동당의 제의를 평화통일의 전주곡으로 착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1592년 우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20만 대군을 능히 무찌를 수 있는 30만의 군대를 갖고 있었다면 일본은 우리를 넘보지 못하였을 것 아닌가. 1950년 6월, 우리들의 방어태세가 철통같은 것이었다면 인민군이 감히 남침을 꿈이나 꾸었겠는가. 우리들의 조국이 진정 평화를 사랑한다면, 그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도둑이 들고, 지키는 주인이 힘이 없어 보이면 강도로 변한다. 약해 보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욕심을 내게 된다면 약해 보이는 그 자체도 일종의 죄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총련의 젊은이들아 들으라.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져서 이 땅의 경제가 곧 되살아나고 정치가 당장 바로잡히고 분단된 조국이 곧 통일이 될 것 같은가. 그대가 진정 조국을 사랑한다면, 북한의 굶주린 형제와 자매를 위해 자루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쌀을 구걸하라. 탁발승이 된 경건한 수도자의 모습으로, 그 심정으로!』
현충일에 생각했다. 『국군은 죽어서 말을 하는데 우리는 왜 들으려 하지 않는가. 나라의 형편이 이렇게 어려워졌는데 죽어서 말하는 국군의 저 목소리를 우리는 왜 외면하고 저마다 저 잘 살 궁리만 하고 있는가』<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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