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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시절 친구들 어디갔나요/로버트 할리(한국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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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시절 친구들 어디갔나요/로버트 할리(한국에 살면서)

입력
1997.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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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였다. 한국에 처음 온 나는 욱이와 익이라는 초등학생 형제가 있는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 두 아이는 형제임에도 밤과 낮처럼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큰 아이인 욱이가 조용하고 침착한데 반해 작은 아이인 익이는 시끄럽고 귀여우면서 장난이 심했다.아침에 샤워를 할 때면 언제나 익이가 뭘하고 있는지 살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샤워도중에 갑자기 문이 열리며(문을 언제나 잠그지만 송곳이나 작은 핀같은 것으로 문을 여는 기술을 가진 아이였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다) 빙긋이 웃고 있는 익이의 모습이 나타나고 곧이어 개구쟁이의 요란한 몸짓과 함께 웃음소리가 10여분 동안 계속되는 것이었다.

혹시 욱이 어머니가 보지 않을까 하며 조마조마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렇게 여러달을 보내면서 우리는 가족처럼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는 좋은 사이가 되었으며 집에 친구들이 놀러와도 욱이 어머니와 아이들이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 주어 한국친구들을 사귀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어느날 학교 친구들과 야외로 소풍을 갔다. 욱이 형제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시골 친척집에 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산을 오르고 이야기도 하고 놀이도 하면서 즐겁게 보냈으나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한 나는 병원에 자주 다니면서 우연히 맹장의 증세에 대해 상세히 배웠는데 바로 그 증상과 똑같았다. 나는 너무도 아파서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상명이라는 친구가 집까지 데려다 주고 약도 사줬으나 시간이 지나도 아픔이 가시지 않아 결국 병원으로 가 생각대로 맹장염임을 확인하고 바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후 1주일간 입원해 있었는데 상명이를 비롯한 친구들은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병간호에 쏟았다. 미국에서는 병원에 보호자가 거의 없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시간동안 보호자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게다가 친구들은 가족도 아닌 나를 오랜시간 동안 간호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 그 좋던 친구들의 연락처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마음 아프다. 세상에 이처럼 우정이 오래도록 마음 속에 간직될 수 있는 벗이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혹시나 상명이를 비롯한 친구들의 소식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글을 마무리한다.<국제변호사·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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