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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사람의 ‘바보’/이기백 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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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사람의 ‘바보’/이기백 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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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돈 많은 농부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 맏아들은 군인으로 출세하여 귀족의 딸과 결혼하여 잘 살았다. 그러면서도 부인의 사치로 돈이 모자라 아버지한테서 자기 몫으로 3분의 1의 땅을 받아갔다. 둘째아들은 상업을 하여 큰 돈을 벌고 역시 상인의 딸과 결혼하여 잘 살았다. 그러나 이 욕심 많은 둘째도 역시 아버지로부터 자기 몫으로 3분의 1의 땅을 받아갔다.하지만 이들은 마귀의 꾐에 넘어가서 모두 몰락하고 만다. 맏아들은 세계 정복을 꿈꾸며 다른 나라를 침략하다가 졌다. 또 둘째는 욕심을 부려 너무 많은 물건을 샀다가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였다.

셋째아들은 좀 모자라는 바보였다. 그는 부모를 모시고 농사에만 전념하였다. 그리고 괘씸한 형들을 잘 돌봐 주었으므로 가정에 분란이 없었다. 이를 시기한 마귀는 셋째를 꼬여서 형제간에 싸움을 붙이려고 하였다. 마귀는 온갖 방법으로 셋째를 골려주려고 하였지만 일 밖에 모르는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방해하는 마귀들을 모두 붙잡아 죽이려고 한다.

셋째아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마귀로부터 만병통치약을 얻게 되었다. 이때 마침 공주가 난치병에 걸려서, 셋째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그 약으로 공주의 병을 고치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문을 나서다가 여자 거지의 손이 불편한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그 약으로 고쳐준다. 그런데도 셋째가 궁성에 도착하자 때마침 공주의 병이 나았고, 이로 인해 그는 공주와 결혼한다. 그리고 왕이 죽은 뒤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왕은 여전히 노동복을 입고 일만 하였다. 또 그나라 백성들도 각기 부지런히 일하여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이에 늙은 마귀가 변신하여 나타나서 군사강국이 되기를 권하나 성공하지 못한다. 또 돈으로 유혹하였으나 실패한다. 다른 나라 군대를 동원, 침략하여 왔으나 이 쪽에서 상대를 안하므로 절로 물러가 버렸다. 끝으로 머리로 일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면서 높은 망대 위에 올라가 연설을 하던 마귀는 결국 기진맥진하여 밑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톨스토이가 지은 「바보 이반」의 줄거리임을 알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다. 바보 이반은 두 형을 위시하여 누구든지 찾아와서 먹여 달라면 이를 쾌히 허락하였다. 그러나 손에 못이 박히지 않은 사람은 남이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먹어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관습이었다는 것이다.

일하지 않고 먹는 사람을 연암 박지원도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그의 「민옹전」이란 소설을 보면 종로 네거리에 득실거리는 사람들은 주먹이 들락거릴만한 큰 입을 가지고 곡식을 먹어치우는, 황충보다 더 해로운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만일 박지원이 오늘의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여의도에 그 같은 인간 황충이 득실거린다고 하지나 않았을까 싶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온 국민이 위기의식에 잠기는 심각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저마다 국가를 위하여 많은 말들을 한다. 또 자기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대통령이 되어야겠다고들 한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바로 뜨고 보면,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꾀를 부리며 국민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걸 알게 된다. 바보처럼 욕심 없이 일하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이야말로 진실로 민족적 위기를 말하여 주는 징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반은 바보로 되어 있으나,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의로운 사람이라 할 수가 있다.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소돔은 불의 심판을 받고 멸망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서울에는 불의 심판을 면하게 할 열 사람의 의인, 아니 열 사람의 바보가 있는 것일까. 또 부산과 광주에는 그를 구원해줄 열 사람의 바보가 있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실로 암담한 기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모두가 『원컨대 단 열 사람의 바보라도 있어지이다』라고 간절한 기원을 올릴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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