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기 화단 이끌 패기와 역량한국일보사 주최 제3회 한국일보 청년작가초대전이 6월10∼24일 백상기념관에서 열린다. 21세기 우리 화단을 이끌고 갈 패기 넘치는 신진작가들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다. 94∼96년 중 개인전을 가진 40세 미만의 작가를 대상으로 실시된 팸플릿 심사에서 선정된 작가는 한국화 5명, 양화 9명, 조각·설치 3명, 판화 2명 등 총 19명이다. 전시회에는 이들이 2점씩 출품한 38점과 지난해 제2회 초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최인선씨의 근작이 선을 보인다. 대상, 부문별 우수상 수상자와 작품을 소개한다.<편집자 주>편집자>
◎심사평/본심 작품들 완성도 높고 개성 뚜렷
본심에 오른 작가는 19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엄격한 예비심사를 거쳐 올라온 작가들로 개성이 강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출품작의 크기 제한으로 규모가 작고 실험적 설치작업이 드물었으나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무엇보다 완성도가 높고 개개의 성격이 뚜렷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우수작 수상은 양화, 한국화, 조각·설치, 판화 등 4개 분야에서 각각 1명씩 선정하고 마지막으로 대상을 선정하게 되었다.
먼저 장르별 우수상은 양화부문에는 캔버스에 혼합재료 작품인 손진아의 「Situation, The Wall―갇힘」과 한국화에 박영대의 「길」, 조각에 최옥영의 「소한」, 판화에 서희선의 「묶임과 풀림Ⅱ」를 선정하였다.
양화에 있어서 손진아의 작품은 평면에 복합적 공간과 단순하게 복제된 이미지 구성이 돋보이며, 박영대의 한국화는 거칠고 단순한 선묘의 수묵용법으로 자연풍경을 소박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최옥영은 쇠똥으로 조각하는 작가로 재료의 독특함을 잘 살리고 있으며, 판화의 서희선은 완성도 높은 석판화 제작으로 환상적인 내면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였다.
끝으로 최우수작 대상은 나무조각과 낙엽토막을 수직원통(90×90×230㎝)으로 쌓아올린 이재효의 조각 「무제」가 선정되었다. 나무와 낙엽을 의도적으로 둥글게 쌓아올린 이재효의 작품은 자연의 힘과 인간의 의지, 그리고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는 견고한 볼륨의 조각이다. 무엇보다 나무토막과 낙엽으로 독특한 구성의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대표집필 유재길 홍익대 교수·미술평론가>대표집필>
◎초대작가 및 운영·선정·심사위원
◇초대작가(19명)
▲한국화(5명)=강미선, 박영대, 신하순, 양순열, 탁현주 ▲양화(9명)=김경용, 김동철, 도윤희, 문경원, 박봉춘, 손진아, 양만기, 이명복, 이주은 ▲조각·설치(3명)=이재효, 최옥영, 한상업 ▲판화(2명)=박훈, 서희선
◇운영위원
서세옥(위원장, 한국화) 최만인(서울대 교수, 조각) 하종현(홍익대 교수, 양화) 박내경(평론), 김성우(한국일보 상임고문)
◇작가선정위원(1차 심사위원)
오광수(위원장·환기미술관장) 정형민(서울대 교수) 강성원(인천대 교수) 서성록(안동대 교수) 김영호(중앙대 교수)
◇2차 작품심사위원
심문섭(중앙대예술대학장·양화·위원장) 유재길(홍익대 교수·평론) 김병종(서울대 교수·한국화) 서승원(홍익대 교수·양화) 김상구(판화) 김영재(평론) 홍성도(홍익대 교수·설치)
◎대상 이재효씨/“평범한 사람의 정서 표현”
대상을 수상한 이재효(32)씨의 조각 「무제」는 나무를 소재로 자연과 인간의지의 조화로운 결합을 모색한 작품이다. 나무를 원통으로 쌓아올리고 철망으로 단단하게 고정시켜 견고함과 무게감이 느껴지도록 했다. 난해한 현대조각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람도 작품의 의미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온 정서,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를 표현하고 싶다』는 말로 이씨는 작품제작의 동기를 설명한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느끼는 정서가 소중한 것이 아닌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그들이 느낀다면 내겐 새로운 발견』이라며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용문 근처의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작품을 보고 지나가며 툭 던지는 말 한마디가 작업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고 말했다.
작업방식도 머리로 짜맞추기보다는 일상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소중히 여긴다. 고물이나 폐품, 야산의 나무, 굴러다니는 돌처럼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소재를 즐겨 사용한다. 대상수상작에 사용된 나무도 작업실이 있는 용문의 야산에서 모은 것이다.
『사는 곳이나 보이는 것, 느끼는 것이 모두 자연과 친근한 것들이어서 자연적인 소재에 이끌리는 것 같다』 경남 합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도 한몫을 했다. 화업의 길로 들어서는데 자극을 주었던 부산 동래고등학교 미술반 시절도 지금의 그를 만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엄한 선배들 밑에서 매도 많이 맞았지만 「작가는 굶어 죽더라도 작업을 해야한다」는 예술가로서의 삶의 자세를 배웠다. 『실제 작업보다 그 여건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작품의 계기를 발견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에서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려는 의지가 넘친다. 92년 홍익대 조소과를 나왔다. 96년 공산미술제에서 특선을 수상, 지난해 예술의 전당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가졌다.<김미경 기자>김미경>
◎조각·설치/우수상 최옥영/쇠똥냄새 견딘 가족에 고마움
『쇠똥에 밀가루와 느릅나무진을 조금 섞어 발효시킨 뒤, 한 두 달 잘 말리면 대단히 야무지게 되죠. 구수한 냄새까지 납니다』 작품 「소한」으로 조각·설치부문 우수상을 따낸 최옥영(37)씨의 작업은 바로 생활의 연장선이다.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대관령 자락, 바로 그의 집이다. 95년 가을부터 그는 조각가의 시선으로, 쇠똥과의 친교에 들어갔다.
여름쇠똥은 검고, 가을쇠똥은 낙엽색이다. 여름똥의 굳기는 거의 향나무 수준. 반드시 방목된 소의 똥이어야 한다. 사료먹고 큰 소의 똥은 인장력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냄새, 구더기 따위를 견뎌내준 식구들이 고맙다. 내년 3월 금호미술관에서 석조와 쇠똥조각 등으로 개인전을 가질 계획. 강릉대, 홍익대 대학원을 나온 그는 강릉대, 경주전문대에 출강하고 있다.<장병욱 기자>장병욱>
◎판화/우수상 서희선/생명발원 이미지 누에 형상으로 표현
판화부문 우수상 수상자 서희선(29)씨는 미국 뉴욕에서 수상소식을 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수상작은 「묶임과 풀림 Ⅱ」. 칭칭 감긴 붕대를 떠올리는 누에가 작품을 중심에서 지배하고 있고 화려한 색채와 물체를 투시하는 구성이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해부터 매체로 사용한 누에형상은 생명이 발원하는 태초의 공간인 동시에 묶여 있는 이미지를 표현합니다』 판을 만들고, 찍고, 다시 종이 수정과정을 거치는 판화는 조소와 공예, 회화의 성격을 두루 갖고 있지만 표현기법의 한계가 숙명이었다. 그래서 뉴욕주립대 대학원판화과에 유학, 지난해 졸업했다. 유학 중 그는 판화에 오브제, 설치 등을 병행하는 안목을 키웠고 같은 길을 걷는 남편(뉴욕주립대 서양화과 재학중)과 백일된 아들도 얻었다.<김희원 기자>김희원>
◎한국화/우수상 박영대/삶 이야기 전하는 땅의 서사성 그려
『땅의 상징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가 결국 기댈 것은 땅이 아닌가. 풍경화하면 서정성을 떠올리지만 질박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서사성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한국화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박영대(36)씨의 「길」은 구불구불 이어진 논두렁을 통해 질박한 삶을 묘사한다.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에서 바라다보이는 노화도가 고향이다. 완만한 곡선의 지형, 툭 터진 들, 흥겨운 노랫가락. 남도의 하늘과 땅이 영감의 원천이다. 그 영감을 잊지 않기 위해 박씨는 아파트생활을 접고 얼마전 안성으로 작업실과 집을 옮겼다. 『땅의 기운과 멀어지지 않으려는 것이죠』라며 땅에 대한 강한 애착을 피력한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94년 동아미술제에서 특선을 수상했다. 경북대와 한국교원대에 출강한다.<김미경 기자>김미경>
◎양화/우수상 손진아/사람사이의 장벽과 갈등 묘사
양화부문 우수상을 받은 손진아(30)씨는 개인전 중심의 작업을 해오다 이번에 모처럼 자랑스러운 경력 하나를 추가하게 됐다. 수상작은 평소 작품주제로 일관되게 내세워온 「Situation, The Wall-갇힘」 연작시리즈의 하나. 나무패널 위에 각종 복합재료를 사용한 이 작품은 일상에서 느끼는 사람 사이의 갖가지 장벽과 갈등을 표현, 『평면위에 구성한 복합적 공간과 단순하게 복제된 이미지 구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한 느낌, 남녀간의 차이, 신과 인간사이의 벽 등의 주제를 젊은 작가답게 평소 즐겨보는 영화의 중요한 장면을 떠올리며 작업한다. 90년 숙명여대 회화과 및 93년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뉴욕 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이윤정 기자>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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