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성을 좋아한다. 내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고2때 나 혼자서 여학생 여덟명을 데리고 교외의 수박밭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때가 내 여성편력의 전성기였다.나는 팔선녀와 놀아봤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상경했는데 뜻밖에도 내가 입학한 대학에는 나보다 더 센 것처럼 보이는 놈들이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이른바 삼색회. 그들 셋은 각기 자신을 색골, 색마, 색광이라고 소개했다. 아니, 서울놈들은 얌전한 줄만 알았는데 이처럼 대담한 자들이 있다니. 나는 억울하고 분해서 당장 여자깨나 좋아하는 촌놈들로 「떡 삼형제」를 조직했다. 이름하여 떡칠이, 떡팔이, 떡만이.
두 조직은 곧 충돌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투를 벌일 사건은 전혀 생겨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양대 조직원 거의 전부가 여자 손목 한번 못잡아본 숫보기들인데다가, 색이니 떡이니 하는 험상궂은 어구들은 그저 여성에 대한 동경을 간절히 드러내는 역설일 따름이었으니까. 도대체 말이라도 걸어주는 여성이 하나라도 있어야 서로 용쟁호투를 해보지. 야, 이러다간 조직원들을 먹여 살리기는 커녕 나마저도 여자에 굶주려 죽는게 아닐까? 이렇게 약해빠진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바로 지금 내 아내가 된 사람이 나타나 주는 바람에 나는 허겁지겁 무릎을 꿇고 결혼한 것이다. 조직을 배신하고!
따라서 내가 잘 아는 여성이라곤 아내와 어머니 뿐이다. 하지만 두여자 틈바구니에서 연애시절을 포함, 34년동안 부대끼다 보니 도가 트여서 감히 여성에 관한 글도 쓰게 되었다.
여성의 첫번째 특징은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종들이란 점이다. 그들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이성 또는 동성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편지쓰고 전화걸고 만나서 수다 떨고, 심지어는 이미 잠든 남편을 깨워서 별 신통치도 않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여보, 당신 나하고 결혼한 거 후회하고 있죠?』
나는 한 여자의 손에 내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 마지못해 졸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아니!… 왜 갑자기…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햐?』
『아까, 낮에 누가 새장가 들었다는 얘기를 하니까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봤잖아요!』
잠이 확 깬다. 우와 미치겠다.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일생동안 끊임없이 사랑의 표현을 하며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때는 정말 혼자 있고 싶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한 떡칠이가 말을 받았다.
『나는 내 방을 갖는 것이 필생의 꿈이야』
잠자코 듣고 있던 떡팔이가 별 사치스런 말도 다 듣는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나는 요만 따로 써도 원이 없겠다』
한윤수씨는 4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경기 고양에서 살고 있는 출판인. 「고부일기」를 쓴 김민희씨의 남편이자 「붕어빵은 왜 사왔니」를 쓴 천정순씨의 아들이다. 고부갈등에 시달린 경험을 살려 「내 속 썩는 건 아무도 몰라」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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