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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가 줄잇는다/서울·부천·부산서… 국제규모만 10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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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가 줄잇는다/서울·부천·부산서… 국제규모만 10여개

입력
1997.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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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인력 등 거품 우려가 없지 않지만/관객호응 크고 볼거리도 많다영화 마니아들이여, 당신의 수첩을 펼쳐보라. 거기엔 이미 제1회 대학영화 축제(3월), 제1회 서울 여성영화제와 제2회 다큐멘타리영상제, 제1회 시민영화축제(이상 4월) 등이 스케줄란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쉴 틈은 별로 없다. 제1회 애니메이션엑스포(6.25∼8.3),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8.29∼9.5), 제2회 서울국제 어린이가족영화제(7.26∼8.1), 제1회 서울퀴어영화제(9.5∼9.11),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10월), 제2회 인권영화제,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 모두 놓치기엔 아까운 것들이다.

피어나는 영화제의 꽃들, 우리나라는 올들어 영화의 봄을 맞이한듯 하다. 국제 영화제만 10여개, 올해 창설된 것만 8개. 이밖에도 각종 시네마떼끄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영화제들까지 치면 수십개가 넘는다. 바야흐로 이 땅이 1년내내 필름의 페스티벌이 끊이지 않는 축제의 마당이 된 것이다.

영화인들 스스로도 놀라워하는 영화제의 홍수 속에서 이들은 「축제」의 이름에 걸맞는 실적을 낳기도 했다. 우선 관객의 큰 호응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유료관객만 17만명 이상을 동원하고 3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성황을 누렸으며 이후 올해 열린 영화제들도 호응 일변도였다.

관객은 무엇보다 평소 극장 개봉작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영화에의 갈증을 풀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제를 기다린다. 이제 영화는 단순히 한 예술 장르로서뿐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자리잡고 있고, 다양한 요구를 가진 사람들은 다채로운 시선을 가진 눈을 원한다. 그런 면에서 국내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씨의 「미망인」을 상영했던 서울 여성영화제, 남아메리카 국가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다큐멘터리영상제, 극장에서 보기 힘든 단편 영화만을 상영하는 단편영화제 등은 소중한 기회다.

앞으로 열릴 퀴어영화제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랙 애러키 감독의 「리빙 엔드」 외에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동성애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집중적으로 선보이게 된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교과서속의 고전 멜리에스의 「달나라 여행」이, 부산영화제에서는 1930∼50년대의 한국 영화들이 소개되며 국제어린이 가족영화제에서는 「월레스와 그로밋」의 감독 닉 파크의 신작 및 캐나다의 디즈니로 불리는 락 데머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찾아오는 면면들도 반갑다. 다큐멘터리 영상제때 초청됐던 쿠바의 거장 산티아고 알바레즈가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은데 이어 7월 국제어린이 가족영화제에 올 팀 버튼 감독을 팬들은 기대할 것이다. 모두 주제에 따른 집중적인 영화 상영과, 영화를 둘러싼 토론과 세미나 형식으로 이뤄지는 영화제들이 관객에게 안겨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외형적인 성과 외에 영화계가 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확도 있다. 부산영화제가 낳은 광고 및 관광, 지방자치 단체의 홍보효과는 올해 부천시가 적극적으로 비슷한 규모의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를 기획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영화제를 통한 영화교류 역시 중요한 성과다. 우리나라 영화제에 초청된 외국의 주요 심사위원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자신들이 주최하는 영화제에 우리나라의 영화들을 초청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국내 영화들이 외국의 우수영화제에 초청을 받는 사례는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영화계가 갑자기 늘어난 많은 수의 영화제들을 무리없이 치러낼 수 있는가에 대한 기본 조건들을 생각해본다면 영화제 홍수 현상이 일종의 「거품」이라는 우려가 지나친 것은 아니다.

우선 영화제에 필요한 수많은 예산과 인력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선 부산과 부천국제영화제의 경우는 자치단체의 예산과 기업의 협찬 등을 비교적 쉽게 유치, 15∼20억에 가까운 큰 규모의 영화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외의 경우에는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3억 정도의 규모로 열린 여성영화제도 예산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동성애자들의 인권운동 형식으로 열리는 퀴어영화제는 기업협찬을 전혀 기대 할 수 없어 일반 시민들이 회원 형식으로 참여하는 기금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영화제 사이에도 빈부격차가 심한 것이다.

영화제들이 각기 독특한 주제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전문인력과 기본 인력도 태부족이다. 외국 영화제의 경우 그 영화제만을 위해 1년내내 뛰어다니는 전문 프로그래머와 관련 인력들이 움직이지만 우리나라는 영화계의 각종 인력을 끌어모아도 영화제 하나를 제대로 운영하기에 부족한 실정이다.

영화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영화제가 진정한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영화제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동호회 등이 주축이 되고 관객과의 자연스런 피드백을 얻는 것으로 시작, 정부나 자치단체의 지원을 얻는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된 영화제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큰 명성과 많은 성과를 노리는 완성된 형태를 지향하면 무리수를 낳을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제시간에 영화가 상영되지 못하고 제대로 번역이 안된 영화를 봐야하는 기본적인 문제점들을 오히려 놓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에 대한 기대는 크다. 서로 차별화할 수 있는 영화제가 많이 생길수록 우리나라 영화 문화의 다양성은 확보되고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더욱 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엑스포도 있어요/25개국 300여편 참가 25일 개막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 또 하나의 국제애니메이션 행사가 마련된다.

25일부터 8월3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대극장 및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제1회 서울세계애니메이션 엑스포(주최 MBC)는 25개국에서 300여편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참가하는 경쟁 영화제다. 서울국제만화 페스티벌이 출판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아우르는 넓은 개념의 만화 행사인데 비해 만화 영화에만 촛점을 맞춘 것이다.

출품부문은 장편 만화영화와 일반, TV, 아동용, 교육용, 광고용 애니메이션 등으로 나뉘며 대상자에게는 2만달러(한화 약 1,600만원)의 상금을 준다.

행사기간중에는 경쟁부문 출품작 외에 세계 유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거장들의 특별전 및 애니메이션 작품의 원화, 제작 소프트웨어, 관련 게임, 모델 등을 전시하며 다카하다 이사오(일본) 서극(홍콩) 등 유명감독의 초청강연도 마련돼 있다. 특히 홍콩 SFX 무협물의 새 장을 연 서극 감독은 자신의 히트작 「천녀유혼」을 애니메이션으로 개작한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밖에 주최측에서 기대하고 있는 행사는 애니메이션 국제 견본시 「애니마트」다. 여기서는 해외업체 30개사 및 국내업체 50개사가 참여, 애니메이션캐릭터 세일즈 마켓과 함께 주문생산 합작과 관련된 마켓을 열어 국내 우수 애니메이션 인력의 해외 수출의 기회를 열 계획이다.

◎영화제 발목잡는 ‘심의’/시민축제땐 15편중 11편이 상영안돼

영화제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은 영화 심의의 문제다. 이미 열린 영화제들에서만도 여러차례 심의에 의해 「축제」가 얼룩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제1회 시민영화축제에서는 5월2일 연강홀에서 상영 예정이던 단편 소형영화를 비롯, 4일의 애니메이션영화 등 총 15편중 11편이 상영되지 못하는 파행을 겪었다. 공륜의 심의를 얻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에 앞서 4월에 열린 여성영화제도 심의를 필하지 못한 영화들을 자진 삭제하여 상영했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크래시」(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역시 비슷한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심의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영화의 내용을 문제삼은 외부의 압력을 고려, 천안문사태를 다룬 「태평천국의 문」과 4·3사태를 다룬 「레드 헌트」를 도중하차 시킨 제2회 서울 다큐영상제는 영화제 자체의 존폐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룰 제1회 퀴어영화제 역시 심의문제가 앞으로 가장 큰 걸림돌로 예상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사례가 없는 영화제 출품 영화에 대한 심의는 더구나 일관성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시민영화축제에서 상영되지 못한 영화들은 지난해 문체부가 주최한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과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이미 상영됐던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영화제들은 이미 서면심의 등의 간편한 절차를 거쳐 영화를 상영하는 사례를 들어 영화인들은 『영화제 간에도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며 무원칙한 심의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영화계에서는 영화제가 진정한 축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영화제 상영 영화에 대해서는 심의를 면제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없는 영화제는 존재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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