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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과 속죄양/공병호 자유기업센터 소장(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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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과 속죄양/공병호 자유기업센터 소장(한국논단)

입력
199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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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울 때면 도마에 오르는 재벌/비난은 쉽지만 그 대가는 크다성직자들 모두가 깨끗한 사람은 아니다. 교육자들 전부가 청렴한 것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모든 기업가들이 보통 사람의 상식이나 기대를 만족시켜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소수는 늘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성직자나 교육자 사회에서 이따금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을 갖고 전체 성직자나 교육자 사회를 매도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일부 기업인들의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갖고 기업가 전체를 도매값으로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최근들어 한보그룹 사건에서 불거져 나온 각종 부패사건들, 게다가 사업확장 끝에 휘청거리는 일부 대기업들의 문제를 두고 책임론이 분분하다. 책임의 소재를 묻는 사람들 누구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없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 책임을 재벌이라 부르는 대기업들에 화살을 돌린다. 노동계와 사회단체에 몸담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경제난의 주범이 대기업이라고 목소리를 드높인다.

그들은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그럴듯한 논리나 증거를 들이 대는데 필자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정경유착이니 부정부패와 같은 다소 추상적인 구호를 내세운 다음에 이 모든 문제는 당신들 때문이라는 투의 주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과거는 늘 빠르게 잊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경제난의 주범으로 대기업들을 몰아붙이는 일은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시 일기 시작하는 「대기업 후려치기」를 듣게 되면 몇 년전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라 사람들은 벌써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일이 불과 몇 년 전에 이 땅에서 있었다. 「대기업 때리기」는 93년 이른바 「총체적 난국론」과 함께 맹렬하게 전개된다.

경쟁력 하락의 책임은 대기업들의 부동산 투기로 몰아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제조업은 선이고 서비스업은 악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문어발식 확장은 악이고 전문화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당시에 만들어졌던 규제가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호텔업 규제, 레저와 그리고 유통업에 대한 참여금지는 호텔객실비를 턱없이 오르게 하고 말았다. 레저나 위락시설을 즐기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늘자, 정부는 급기야 관광산업지원책이란 것을 내놓게 된다.

특정 집단을 지목하여 속죄양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뿌리깊은 본능이다. 이를 두고 인류학자들은 희생양 의식이라 부른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이나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 역시 희생양 의식의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한 사회에서 무엇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일종의 스트레스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공격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의 평정을 찾지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희생양은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과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고, 소수이어야 하고, 만만해야 하며, 박해할 만한 그럴듯한 정황증거가 있어야 한다. 재벌이라 불리는 집단은 이들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시킨다. 때문에 경제난이 발생할 때마다 도마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비용이다.

그러나 필자는 「갈등하는 본능」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사회문제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희생양을 처단함으로써 화풀이를 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문제는 그 비용의 크기이다. 원시사회처럼 단순한 사회라면,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쉽게 감시할 수 있는 사회라면 희생양의식은 큰 비용없이 사회적 긴장을 해소해 준다. 그러나 복잡한 사회에서 희생의식의 비용은 시장기능 전체의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에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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