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안돌리기·가까운 사람만 알리기·부조금 상한 정하기/정부·지자체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나섰지만 결과는 두고봐야「돈잔치」의 한편에서 「말못할 고민」을 낳고 있는 부조문화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강원 횡성군청은 2월부터 기관장 명의의 청첩장을 억제하고 공무원 개개인과 군민들이 되도록 청첩장을 보내지 않게 유도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또 각종 경조사 부조금을 기관장은 3만원 이하, 부서장 2만원 이하, 일반 직원 1만원 이하로 하도록 권고했다. 군청과 읍·면 사무소에 가정의례 실천추진위원회도 구성했다.
조태진 횡성군수는 그 이후 두차례나 치른 자녀 결혼식때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다. 친인척 등 가까운 사람들만 하객으로 참석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직원들 사이에도 청첩장을 돌리지 않는 분위기가 퍼져 나가고 있다. 횡성군청 가정복지과 엄선익씨는 『주위의 눈초리 때문에, 또는 자발적으로 청첩장을 돌리지 않는 직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금산군도 직급별로 1만∼3만원의 부조금 상한기준을 정하고 근무시간중에는 친인척이 아닌 사람의 경조사에 참석하는 것을 금했다. 또 직원 본인 및 직계 존속의 장례식때 조화나 화분을 보내던 것을 군수 명의의 조기로 대신하도록 했다.
서울 동작구청과 인천시교육청도 경조비 상한선을 3만원으로 정하고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경조사를 알리는 행위를 일절 금했다. 인천시교육청의 한 직원은 『그런 조치가 나온 이후 1만원짜리 한장을 달랑 봉투에 넣어 건네기가 쑥스러워 계·과단위로 부조하는 새유행이 생겼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오랜 관습인 겹부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온 남제주군청은 이를 뿌리뽑기 위해 19억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마을간에 겹부조 퇴치 경쟁을 시켜 최우수 마을에 2억원, 우수 마을 7곳에 각 1억원, 장려마을 20곳에 각 5,000만원을 특별지원키로 한 것. 남원 표선 안덕 등 일부 마을은 군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 주민에게는 3년간 각종 융자나 공공혜택 추천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마을규약을 채택하기도 했다.
중앙부처와 시민단체에서도 경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직원의 경조사 내용을 본부 및 산하기관·관련 단체 등에 팩시밀리나 전화로 알려 각과 게시판에 써 붙이던 관행을 없애고 당사자가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직접 알리도록 했다.
또 환경운동연합 전경련 등 37개 시민·경제단체가 참여한 「건전 가정의례 정착을 위한 생활개혁실천 범국민협의회」(생개협)도 활동에 들어갔다. 생개협은 건전 가정의례 정착, 장묘문화 개선을 우선 과제로 정하고 무분별한 청첩장 남발과 부조금 수수, 과다한 화환 진열 등을 막는 운동을 조직적으로 펼칠 방침이다.
각급 행정관청과 단체 위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움직임이 얼마만큼 우리의 부조문화를 개선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결혼문화원 신산철 총무는 『얼마를 받았는가, 몇명이 참석했는가가 그집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기준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얼마나 해야 하나?/혼·장례,회갑,고희연 개인부조 3만원/단체 1인 1만원 적당/돌잔치는 금 반돈/출판기념회 책 2권값
『얼마나 해야 하나』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늘 액수를 고민해야 하는 부조.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고 성의를 표시할 수 있는 적절한 액수는 어느 정도일까. 또 어느 선까지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상호부조 본연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경조사를 맞은 사람과의 친밀도 및 자신의 소득수준을 고려하라고 조언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 이현송 책임연구원은 『부조는 사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경조사때 서로 도와 온 전통』이라며 『부조 범위가 거래처나 관공서 등 공적관계로 넓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가정생활상담소 황점곤 대표는 『그동안 부조금 인플레가 지나쳐 당장 액수를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경조사비가 가계에 부담을 줄 정도로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부조 범위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가정생활상담소는 적절한 액수 기준을 나름대로 마련해 두고 상담에 응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혼·장례, 회갑, 고희연의 경우 개인부조는 3만원, 단체부조는 1인 1만원 정도가 적당하다. 돌잔치는 금반지 반돈에 상당하는 2만원 내외, 출판기념회는 책 2권 값인 1만5,000∼2만원을 보태거나 책을 2권정도 사 주는 것이 좋다.
또 부조 범위는 친척인 경우 친가 6촌 외가 4촌, 직장에서는 같은 현직에서 얼굴을 맞대는 동료까지 정도가 적절하다. 상조회 등에서 단체로 부조를 할 때는 별도로 부조할 필요는 없다. 친구의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나 현재 교제하는 동창생 정도가 무난하다.
단체로 선물을 함으로써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성의를 표시할 수도 있다. 가정생활상담소 황대표는 아기 출생 전에 친구들이 돈을 모아 필요한 물건을 선물하는 서구의 「베이비샤워(Babyshower)」를 한 대안으로 소개했다. 부조금 대신 돌잔치나 회갑·고희연때 축하를 받을 사람이나 가족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목록으로 만들어 가까운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함께 사 주면 부담을 덜 수 있다고 권했다.
그는 『초청장과 부고를 남발하는 것은 마음과 정성을 나누는 상부상조의 전통을 오히려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드시 알리고 싶은 소식이 있다면 경조사가 끝난 후 편지나 엽서 등을 띄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귀띔했다.<김경화 기자>김경화>
◎정부도 손못대는 부조관행/규제지침 공무원조차 반발/국민의식개혁만이 해결책
부조에 관한 한 정부도 속수무책이다. 경조사비가 정책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여러번이지만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나온 적은 없었다. 사적으로 오가는 돈봉투를 규제할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오랜 전통인 부조문화의 뿌리를 뽑겠다는 식의 개선책을 내 놓았다가는 당장 반발에 부딪힌다. 공무원들조차 청첩장을 돌리지 말자고 하면 불평을 터뜨린다. 부조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그만큼 높고 험하다.
정부는 지난달 「공직사회의 합리적 경조사 관행 권장 지침」에 따른 공무원 직급별 부조금 한도액 기준을 제시했다. 장·차관급은 5만원, 실·국장급(1∼3급)은 3만원, 과·계장급(4,5급)은 2만원, 6급 이하 공무원은 1만원이 부조 기준이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의 공직자 가정의례 준칙을 조만간 마련해 실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지침이 보도되자 총리실 산하 고충처리위원회에는 『지금까지 부조금으로 나간 돈은 누가 보상하느냐』는 공무원들의 항의 편지가 십여통 날아 들었다. 30년 동안 행정기관에 복무했다고 밝힌 한 50대 공무원은 편지에서 『그동안 꼭 인사를 해야 할 경우에 부조한 돈이 수천만원에 달한다』며 『공직자 윤리법이나 공직자 관혼상례 규정을 만들어 사실상 부조를 규제하면 그동안 공들여 품앗이한 것은 어떻게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총무처 복무담당관실 관계자는 『경조사와 관련한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규제보다 행정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관공서 지방자치단체 금융기관 정부투자기관 등에서 산하단체나 유관 업체에 경조사를 일률적으로 고지하는 악습을 막기 위해 이를 감사대상으로 지정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일부 관공서나 정부투자기관에서는 유관업체에 팩시밀리로 청첩장을 보내 민원을 사기도 했다. 팩시밀리 청첩장은 「고지서」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문화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살려내기 위해 개정안을 만들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경조사 부조금을 일절 금지하고 호화예식과 피로연을 규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법령을 뜯어 고쳐 풍속을 규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 국민의식 개혁이 보다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가정복지과 김성일 과장은 『국민 전체가 부조문화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의식개혁에 나서지 않는한 비뚤어 진 부조 관행을 바로잡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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