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권교체냐,세대교체냐(장명수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권교체냐,세대교체냐(장명수 칼럼)

입력
1997.06.04 00:00
0 0

한국일보와 SBS 공동주최로 진행중인 대선주자 초청 시민포럼에 첫 토론자로 나온 김대중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는 정권교체와 세대교체를 동렬에 놓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정권교체는 야당의 당연한 목표지만, 세대교체론은 나이에 대한 차별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그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세대교체론이 정권교체론과 맞먹는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김영삼정권에 대한 분노가 거세지면서 세대교체론과 정권교체론이 함께 힘을 얻고 있다. 대선때까지 불길이 어느쪽으로 번져가느냐에 따라 여·야는 웃고 울게 될 것이다.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당이 야당되고 야당이 여당되는 권력의 순환이 없었기 때문에 정권의 오만과 부패가 근절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쿠데타로 권력이 이동한 적은 있으나 선거로 정권을 교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여당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야당은 미래에 대비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김영삼정권에 실망한 사람들은 『이제는 정말로 정권을 한번 바꿔 보자. 국민이 무섭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대교체론자들은 김영삼식 통치에 대한 혐오감을 그 시대 정치인들, 특히 3김씨에 대한 혐오감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정치의 구태를 벗으려면 구시대 정치인들을 청산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신한국당이 확보하고 있는 기라성같은 대선주자들은 세대교체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을 품게 했다. 대선주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학벌과 경력이 탄탄해서 「새 정치」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였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의 싸움이 지루하게 계속되면서 산들바람처럼 산뜻했던 세대교체론은 급속하게 신선감을 잃게 됐다. 누가 만들어 낸 말인지 9룡이니 8룡이니 하는 징그러운 호칭도 신선도를 떨어뜨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용은 또 뭐야. 곤룡포라도 입겠다는 거야?』라고 얼굴 찡그리게 되는 시대착오적인 호칭이다. 구시대 정객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세대교체 해봤자 큰 효과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대교체고 뭐고 간에 더이상의 대통령을 원치 않는다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내각제를 돌파구로 삼고 있다. 내각제 찬성률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것은 내각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기 때문이 아니고, 대통령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겨움의 발로라고 봐야 한다. 나라의 뿌리가 송두리채 흔들릴만큼 국력을 소모하면서 뽑아놓은 대통령들이 그 모양이라면, 모조리 감옥에 가야할 정도라면, 선거는 왜 하느냐는 허무주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억압된 불만이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터지면서 대통령 혐오감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최근 한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내각제 지지가 45.1% 대통령제 지지가 35.9%인데, 지난 3월 조사에서는 내각제 36.8% 대통령제 35.9%였다. 95년 9월 조사에서 47.5%이던 대통령제 지지와 31%이던 내각제 지지가 이처럼 뒤바뀐 것은 김영삼 대통령과 그 아들에 대한 혐오감의 결과다. 같은 조사에서 세대교체는 40.8% 정권교체는 40.7%로 지지율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이 숫자 역시 앞으로의 정국추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숫자다.

정권교체냐, 세대교체냐, 아니면 내각제냐는 엇갈린 주장에서 유권자들이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은 단세포적인 반응을 억제하고 냉정하게 각 주장의 득실을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쪽이 지겨워서 저쪽으로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저쪽이 왜 좋은지를 거듭거듭 다지면서 확신을 가지고 가야 한다. 확신없는 선택, A가 싫어서 B로 갔던 무책임한 선택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선거에서의 선택이란 어차피 상대적인 것이고, 최선이 없을땐 차선을 택할 수 밖에 없는것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선택을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밝히고 남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혐오감으로 정치를 외면할 때가 아니라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야 할 때다. 허무주의나 히스테리로 주장을 바꾸는, 믿을 수 없는 유권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왜 누구를, 무엇 때문에 지지하는가. 유권자들이 각자 정견발표를 준비해야 한다.<장명수 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