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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풍양속이 ‘골칫거리’ 변질/부조문화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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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풍양속이 ‘골칫거리’ 변질/부조문화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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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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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봉투엔 얼마를 넣을까”/아예 가기 귀찮아 경조환서비스 이용하거나 온라인 송금하기도경제적으로는 곤궁해도 관혼상제만큼은 번듯하게 치러야 했던 전통사회에서 서로 돌아가며 작은 정성을 보탰던 생활의 지혜. 그렇게 시작돼 이어져 내려온 부조는 어느새 미풍양속이라기보다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골칫거리」로 변질하고 있다. 집집마다 형편대로 쌀 기름 종이 계란 명태 등 현물을 보태던 때의 그 정성을 돈에 담기는 어려워서일까.

서울 서초동에서 카드 주문제작일을 하고 있는 이모씨. 『대개는 300∼500장을 찍지만 더러 1,000장 넘게 주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민들보다는 관공서나 기업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찍죠. 한 금융기관 대표이사가 아들 결혼식 청첩장을 6,500장 찍었던 게 제일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한테야 큰 고객이지만 그 많은 청첩장을 받아 들고 고민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첩장이나 부고를 뿌리는 사람은 『한 사람이라도 더 와 주었으면』 하지만 그것을 받아 든 사람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봉투에는 얼마를 넣어야 하나』를 순간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것이 부조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면 이런 문제가 없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라면 사정은 딱해 진다. 선뜻 응하자니 썩 내키지가 않고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개운하지 않다.

96년 10월 해태제과 본사 및 연구소 사원 1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93.9%가 처음 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청첩장을 받은 적이 있고 그중 80%가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68.5%가 부조를 했다고 응답한 점. 그 이유에 대해 50%가 「소속팀 또는 상급자와의 관계 때문에」, 37.5%가 「부담이 되지만 어쩔 수 없이」라고 응답했다.

부조를 받는 쪽이라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쁜 시간을 내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들고 와 준 손님 대접에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3월 중순에 둘째 딸 혼례를 치른 안모(57·서울시 봉천동)씨. 『결혼식 피로연에 갔다가 기분 상했던 게 한 두번이 아니어서 고급 뷔페식당으로 모시는 등 피로연에 많은 돈을 들였어요. 그런데도 「음식이 모자란다」 「너무 좁다」는 불평이 들려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들어 중류층 가정을 중심으로 우산 도서상품권 가정용품세트 전화카드 등 실용적 선물로 피로연을 대신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아예 식사비나 교통비를 염두에 두고 5,000∼1만원씩 봉투에 넣어 두었다가 축의금과 교환하는 「답례 봉투」 방식도 성행하고 있다.

부조 문제로 축복받아야 할 결혼식장이 고성이 오가는 「싸움터」가 되기도 한다. 서울 도심의 한 대형건물 예식부에 근무하는 K씨는 『신랑 신부 어느 한 쪽 집이 지방에 있는 경우 「멀리서 오는 바람에 부조를 제대로 못받아 손해가 크니 예식장 비용이라도 덜 내겠다」 「말도 안된다」며 양가가 다투는 일이 의외로 많다』고 전했다.

한편 바쁜데도 억지로 경조사에 참석하기보다는 우체국 경조환 서비스나 은행의 온라인 송금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시작된 조흥은행·우체국 공동 경조환 서비스는 집배원이 인사장과 경조환 증서를 배달해 주는 서비스로 한달만에 이용자가 9,000명을 넘었다.<황동일 기자>

◎‘떡값’으로 변모한 부조금/“눈치보지 않고 돈 건넬 기회”/고위인사 경조사 ‘북적북적’

부조로 포장된 「떡값」. 사회 일각에서 경조사가 엉뚱하게 뇌물성 촌지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는 기회로 변질되고 있다. 관공서나 기업체 고위 인사의 경조사때면 두툼한 부조 봉투를 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유력 인사의 「눈도장」을 받을 수 있고 눈치 안보고 떳떳하게 돈을 건넬 수 있기 때문이다. 뇌물성 촌지나 정치자금도 이 틈에 오간다. 부조금액도 치솟는다.

지난해 10월 뇌물수수 혐의로 경찰에 소환된 정재균 전 영천시장의 아들 결혼식때는 축의금만 1억7,000만원에 달했다. 94년에는 김종필 당시 민자당대표가 정일권 전국무총리 장례비 명목으로 5대 재벌로부터 1억원을 갹출해 파문을 일으켰다.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는 지난 2월 95년 3남 결혼 당시 대기업으로부터 수억원의 축의금을 받았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는 지난 3월 장남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007 영화를 방불하는 작전을 펴야 했다. 예식일에 임박해 식장을 바꾸고 『결혼을 연기했다』는 헛소문까지 퍼뜨렸다. 이와 반대로 박양실 전 보건사회부 장관은 93년 취임 직후 아들 혼례를 치르려다 호화 혼례 아니냐는 물의를 빚어 퇴임했다.

관공서나 대기업체 「물좋은 자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경조사를 한밑천 챙기는 기회로 삼는 예도 드물지 않다. 관공서는 관내 업소나 소관 중소기업에, 대기업은 하청·협력업체에 청첩장과 부고를 마구잡이로 보내 「수금」에 나선다.

지난달 인천 계양구 이헌진 구청장은 자신의 회갑연 겸 출판기념회 초청장 6,000여장을 관내 업체와 유흥업소에 뿌려 물의를 빚었다. 경기 안양시에 있는 한 중소제조업체 사장은 『인허가 관계로 관공서에 들렀다가 일관계로 안면이 있는 한 공무원한테 청첩장을 받고 「괘씸죄」에 걸릴까 두려워 10만원을 부조했다』고 밝혔다.

한편으로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은 지역구민들의 청첩장과 부고장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선거법에 정해진 유권자 대상 부조금 한도액은 2만원. 하지만 선거기간이 아닐 때도 2만원을 부조하다가는 『당선되더니 돌아 오는 게 없다』는 뒷말을 듣게 마련이다. 서울의 한 자치단체장은 『경조사비 부담이 워낙 커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부조금 대신 특별제작한 커플용 티셔츠를 선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에 지역구가 있는 K의원은 『조기축구회, 등산회, 심지어 계모임에서까지 경조사를 알려 와 부조금으로만 월 300만원 이상 지출한다』며 『청첩장을 받고도 반응하지 않았다가 「다음 선거 때 보자」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김경화 기자>

◎일본의 부조문화/한국인과 결혼한 나코세씨/아주 가까운 사람만 초대/초대받은 사람들은 참석여부 반드시 통보/부조금 친구 2만∼3만엔 가까운 친척은 10만엔/돈 남으면 복지시설 기증

한국생활 3년째인 일본인 나코세 히데미(명고뢰수미·29·여)씨. 지난 1월 한국에서 백창흠(38·화가)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일본의 친척과 친구들에 청첩장을 보내면서 「항공권을 보내 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운」 사정을 밝혔다. 20여명의 친척과 친구들이 자비로 항공료를 내고 일본에서 건너왔다. 이들은 2만∼5만엔씩 부조금을 내밀었다. 봉투 대신 신혼살림에 필요한 물건을 선물해 준 친구들도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예식을 올렸어도 참석자는 크게 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앞으로 그분들 경조사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참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청첩장을 받고 이리저리 핑곗거리를 찾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결혼식에 초대받는 사람은 신랑 신부측 각 30∼50명 정도다. 신랑 신부와 직접 관계가 없는 부모의 친구들이 초대받는 일은 드물다. 적어도 3개월 전에 청첩장을 보내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참석 여부를 미리 통보한다. 경조사비 봉투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무겁다. 친구는 2만∼3만엔, 가까운 친척이라면 10만엔 정도는 한다.

결혼식 참석자들이 후닥닥 끼니를 때우고 일어나는 피로연의 모습도 나코세씨는 아직 낯설다.

『일본에서는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사람들을 「풀코스」로 대접해야 합니다. 축하객은 자기 명패가 달린 좌석에 앉아 두세시간 신랑 신부와 함께 식사하며 즐깁니다. 혼주는 대개 정성껏 마련한 답례품을 축하객들에 전하지요』

결혼식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부조금 흑자」는 거의 불가능하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장례식때 종종 조의금이 장례 비용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때는 남은 돈을 사회복지시설에 기증하고 편지로 이 사실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게 상식이 돼 있다.

『한국식 부조문화는 보다 많은 사람과 기쁨이나 슬픔을 나누는 것이 장점인 것 같아요. 그러나 청첩장이나 부고를 남발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더군요. 진심으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을 초대해야 경조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지 않을까요』<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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