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있는 보석같은 글들 문학전집으로 엮어/수필집 ‘인연’·시집 ‘생명’·번역시집 등 전 5권언제라도 읽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쓰다듬어 주는 글이 있다. 금아 피천득 선생의 글이 바로 그렇다. 영문학자이자 수필가, 시인인 금아 선생이 지난달 29일로 미수(88세)를 맞았다. 미수에 맞춰 그의 문학전집이 샘터사에서 5권으로 출간됐다. 수필집 「인연」과 시집 「생명」, 평소 애송하는 동서양의 시를 모은 번역시집 「내가 사랑하는 시」와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 짧은 시 13편이 김복태씨의 그림과 어우러진 작은 시집 「꽃씨와 도둑」. 과작인 그의 67년 문필생활에서 쓴 글 전부를 모은 것이다.
그의 수필집 「인연」에 「장미」라는 글이 실려 있다. 60년대 어느 무렵에 쓴 글인듯 하다. 잠이 깨면 바라다 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전차를 기다리다 만난 Y가 부인이 달포째 앓고 있는데 약 지으러 갈 돈이 없다고 해서 머뭇거리다 두 송이를 준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남은 장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가다가는,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나 하숙집을 찾아가 두 송이를 꽂아준다. 남은 세 송이의 장미가 시들세라 빨리 걸어가는데, 애인을 만나러 가던 K가 꽃을 탐내는 듯 보여 남은 꽃송이를 다 주고 만다. 『집에 와서 꽃 사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꽃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리고 그 일곱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되는 것 같아 서운하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교과서에도 실린 저 「수필」에서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을 갖지 아니할 때는 수돗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듯 그의 글에서는 방향이 배어나온다. 「여름날 철철 넘는 비이르 잔을 바라다보면 한숨에 들여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젊었을 때 잉그리드 버그만이 필립 모리스를 핀다는 기사를 읽고 20센트로 같은 순간에 같은 기쁨을 가지려 모리스 한 갑을 피워본 일」도 있지만 술 담배를 안하는 그는 요즘도 건강하다.
지난달 29일 열린 미수연에는 부인과 2남1녀, 제자 친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그는 만년을 이런 생각으로 살고 있다.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 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 없는 사람이다」(수필 「만년」에서).<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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