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이 뛰어난 달변가라면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웅변가에 속한다. 두 사람이 연방 대통령과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91년 중반, 러시아인들은 가슴에 파고 드는 옐친의 강렬한 연설에 환호를 보냈다. 그로부터 6년. 옐친 대통령은 이제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식언으로 눈총을 받는 처지로 전락한 듯하다.가장 최근의 식언은 지난달 27일 파리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의 기본협정 조인식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이날 행사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한뒤 『우리는 나토 회원국을 겨냥한 핵무기의 핵탄두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 등 나토 정상들과 세계의 언론은 그의 폭탄선언에 경악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나토 회원국을 겨냥했던 핵무기의 표적을 다른 곳으로 바꾸겠다는 의미였음이 밝혀졌다. 이는 이미 수년전에 취해진 「재탕」에 불과한 것으로 옐친은 국제사회에 큰 식언을 한 셈이 됐다.
무엇보다 러시아인의 피부에 와닿는 식언은 지난달 23일 모스크바 북쪽의 1275학교에서 나왔다. 그는 외손녀인 마샤가 다니는 이 학교의 「마지막 종」축제(학년이 끝나는 것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에게 「보통사람 옐친」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대통령의 월급이 그렇게 많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은행대출을 받아 조그만 다차(별장)를 짓고 BMW 자동차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옐친의 별장은 대지가 4㏊, 건평 400여㎡에 이르고 시가로는 1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은 대통령이 스스로의 재산을 축소, 은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솔직한 재산공개를 촉구했다. 결국 옐친은 최근 자신의 부동산이 11억8,000여만 루블(약 21만달러)에 이른다고 신고했다.
어느 국가의 대통령이든 인기관리를 위해 「깜짝 발언」을 즐긴다. 그러다보니 식언도 나오고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뒤집기도 한다. 그러나 잦은 식언은 정치생명을 끝장낼수도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