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광범위… 청탁유무 관계없다”/5가지 기준도 제시,독직사건 수사 큰 파장법원은 2일 한보 특혜대출사건 선고공판에서 국회의원인 권노갑 피고인에게도 포괄적 뇌물수수죄를 적용함으로써 관행화한 정치인들의 금품수수 관행을 단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법원이 이 죄목을 적용한 것은 지난번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이 처음. 지난 4월17일 대법원 판례는 『공무원의 직무와 금원의 수수는 「전체적으로」 대가관계에 있으면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즉 국정수행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에게는 구체적인 대가관계가 없이도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취지로서, 이날 권피고인에 대한 한보사건 재판부의 선고는 국회의원에게까지 그 적용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법원은 지금까지 정치인의 금품수수에 대해 구체적인 청탁이나 직접적인 직무관련성이 있을 때만 뇌물죄로 처벌하고 그밖의 경우는 정치자금으로 인정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통령의 역할에는 미치지 못하나 국회의원도 국정전반에서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만큼 청탁의 유무와 직무관련성이 구체적이거나 특정되지 않아도 뇌물죄가 성립된다고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정치자금과 뇌물의 판단기준 5가지를 제시, 돈받는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처벌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청탁의 유무 외에 인적관계, 정치사상의 공유여부, 돈의 규모와 전달방법이 뇌물의 기준에 포함됐다. 정치인이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고 주장해도 이들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 뇌물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이번 판단은 앞으로 검찰의 전반적인 독직사건 수사에 결정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돈받은 정치인의 수사에서 가장 큰 애로점인 대가·직무관련성에 얽매이지 않고 단지 전체적인 뇌물의 성격만을 규명하면 공소제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앞으로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도 관심을 끌고 있다. 사전수뢰 혐의가 적용된 문정수 부산시장을 제외하고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서 1천만∼5천만원의 돈을 수수한 나머지 정치인 7명에게도 같은 잣대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1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검찰도 정치인들을 기소하면서 『구속, 불구속에는 이유가 없다.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에 의해 형량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혀 법정구속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리스트에 올랐으나 면죄부를 받은 다른 정치인들과의 형평성이 변수로 작용, 유죄는 인정하되 집행유예하는 선에서 공판이 마무리될 공산도 크다.<이태규 기자>이태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