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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으로 열린 복/이지관 가산불교문화원장(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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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으로 열린 복/이지관 가산불교문화원장(화요세평)

입력
1997.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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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민심이 복있는 지도자 만나니/경륜·정책보다 복짓는 생활이 더 중요복되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희망이다. 단란한 가정, 정의로운 사회, 복지국가 등 복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사회가 지향하는 이념이 된지 오래다. 우리 절집에서도 복이 없으면 수행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무상복전인 산문에 들어왔다가 그 문을 돌아서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산문의 옛스님들은 있는 복도 아껴야 한다고 한결같이 강조하였다. 산에서 나무를 아끼고 강에서 흐르는 물을 아끼라 하였다. 옛날 나옹 스님은 흘린 콩나물 하나를 건지려 5리를 따라갔으며, 쌀 한톨 버려져 썩으면 제석천왕이 그 집에 등을 돌린다 하였다. 요즘도 스님들은 자신이 사용한 밥그릇을 씻은 물에 조그만 찌꺼기라도 남아 있으면 바늘구멍만한 목을 가진 아귀의 목을 막고 살생을 하게 된다하여 설거지 물이 천장의 티끌을 비칠 수 있을 만큼 깨끗할 때 그 물을 버린다.

또 공양을 하기 전에 외우는 오관게에 『이 한술의 밥이 온 곳을 생각하니 그 은혜가 한량 없구나』하였으니, 한 톨의 쌀알이 우리의 입에 까지 이르려면 그 은혜는 끝도 없다. 기름진 흙과 흐르는 물, 따뜻한 바람, 그리고 쏟아지는 태양열, 밤이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과 이슬, 나아가 허리 구부린 농부의 가없는 수고, 그 외에도 알 수 없는 은혜가 모여 우리를 살린다. 일용할 양식 뿐만아니라 일용의 모든 물건이 자연과 타인의 수고로부터 온다. 더 나아가 생각하면 이 몸도 자연과 부모의 사랑과 수고로부터 기인한다.

우리는 흔히 지혜는 배움에서 생긴다고 여긴다. 하나 그렇지 않다. 지식은 배움에서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반드시 맑음으로부터 온다. 복은 검소함에서 오고, 검소함은 은혜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은혜를 아는 것은 존재의 실상을 아는 것이요, 존재의 실상을 아는 것은 지혜를 얻는 일이다. 지혜를 얻는 것은 곧 자유를 얻는 것이다. 복과 지혜, 그리고 자유 이 셋은 하나인 진리의 체(지혜)요 용(자유)이요 상(복)일 뿐이다. 진정 복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유롭다.

선가의 큰 스승들이 지혜를 얻은 일화는 요즘 배움이 무엇인가를 반성하게 한다. 선종의 2조 혜가대사는 스승인 달마의 문 앞에서 진리를 구하고자 눈이 키를 덮는 폭설 속에서 묵묵히 팔을 잘라 믿음을 표했으며, 6조 혜능 스님은 방앗간에서 벼를 찧는 일을 일삼아 도를 얻었으며, 삼족화상은 불때는 부목으로 복을 짓다가 뜨거운 화로를 머리에 이고 그리던 스승의 방문을 여는 순간 확철대오하였다. 이 스님들은 대도를 성취하여 생사를 해탈하고 대자유를 얻은 분들이다. 촌음을 아껴 대중을 위하고 도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무문의 대도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요즈음 복되게 살고 싶은 민심이 불안해 하고 있다. 복된 나라를 만드는 일은 물론 위정자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라의 최고지도자인 통치자란 말이 공연히 붙여진 것이 아니다. 복과 지혜를 운용하여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어갈 책임과 의무를 스스로 선택하고 약속한 절대 헌신의 자리일 뿐이다.

또 복된 민심이 복있는 지도자를 만난다. 박씨를 문 제비는 흥부집을 찾는다. 유유상종은 상응의 원리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고 싶을 때 채널을 맞추어야 하듯이 민심의 채널이 지혜롭고 복되어야 한다. 이불 밑에 숨길 것이 없고, 담 밑에 버릴 이 없으며, 나의 상처보다 이웃의 아픔을 먼저 느끼는 맑고 향기로운 민심으로 복을 아껴서 태양같이 밝고 뜨거운 큰 나라를 만들어야겠다.

언론과 민심이 복된 나라를 이끌어갈 분을 열심히 찾고 있다. 경륜도 정책도 중요하지만 우선 복짓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또 할 수 있는지 살펴야겠다. 복은 지혜와 자유의 다른 모습일 뿐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재물과 누리고 싶은 권세가 많다면 분명 복있는 사람이 아니다. 집착하는 한 생각, 한 물건도 가진 것 없어 닫을 문마저 없을때, 그 자리에서 비로소 만물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마음을 얻고 무문의 대도의 문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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