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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비자가 본 사교육문제/문정숙(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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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비자가 본 사교육문제/문정숙(전문가 진단)

입력
1997.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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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교과목에 고난도 수능시험 학생 학교밖 내몰아/공급자중심 교육 과감히 탈피할 때최근 2, 3개월동안 사교육비가 사회문제로 확산되면서 여러 기관에서 조사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사교육비 추정금액도 기관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교총과 서울대 교육정책연구소의 공동연구에서는 연간 9조4,000억원으로, 소비자보호원에서는 11조9,000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천문학적 숫자로 나타난 사교육비의 규모가 가계의 한계를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학생의 17.7%가 입시 때문에 과중한 정신부담을 갖고 있으며, 입시에 다가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고3생 4명중 1명이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는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심각한 사교육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주로 기존의 논의가 공교육 공급자의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유감스럽다. 이제는 교육 수요자 내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사고전환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절대빈곤의 타파와 경제성장을 앞세운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은 공급자 중심의 경제구조를 구축하여 왔다. 공급자 중심의 경제구조가 갖는 문제의 폐해는 독점적 시장구조, 정보전달의 문제, 기업의 창의성과 경쟁력 약화, 규제 일변도의 경제정책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사회 각 분야, 특히 교육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교육공급자의 독점적 시장구조, 교육수요자들의 공급자에 관한 정보부족(교과내용, 비싼 등록금 등 투자의미의 적절성, 교육전달자의 질적 판단에 관한 정보획득의 어려움 등), 규제일변도의 교육정책 등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건전한 세계시민 육성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에 유학 갔을때의 일이다. 어차피 언어 문제를 안고 있는 외국학생으로서는 수학 과목을 먼저 수강하는 것이 학점 따기에 쉬웠다. 주위의 미국학생들은 콜라와 팝콘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우리가 한시간 정도면 할 수 있는 것을 몇시간 씩이나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숙제를 보여주겠다는 나의 제안을 거절했을 뿐아니라 남의 것을 보고 베끼거나 정답이 나온 자습서를 들여다 보는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교과목의 수도 우리보다 훨씬 적었고 과외도 우리보다 적게 했지만 정직이란 덕목은 제대로 교육받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의 경우 고등학교의 그 많은 과목들을 소화하고 배울 수 있다면 교육총량으로 보아 든든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많은 교과목은 사교육비 부담을 유발하고 참다운 인간을 키워내는 인성교육을 등한시 하도록 만들고 있다.

더구나 전과목을 포함하는 수능시험이 지나치게 어려워 교육을 담당하는 필자도 놀랄 때가 많다. 일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학교 교과과정에서는 수능시험을 대비할 만한 교재나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고 한다. 따라서 수능의 벽에 직면한 학생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교육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수능시험은 이상적인 평가제도로 인식될 수 있으나 정작 학교에서는 대처하지 못해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교육 수요를 다소간 줄이려면 공교육의 정상화와 더불어 학생을 학교 안으로 끌어 들일 수 있는 수능제도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입시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은 제도의 안정성을 해쳐 현명한 조치가 될 수 없으므로 현행 입시제도의 틀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공교육을 충실히 하는 것에 기본방향을 두어야 할 것이다. 통합·탈교과식 출제비중과 난이도를 기술적으로 조절하고 사교육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 논의하는게 급하다. 이와 더불어 교재개발 및 교사 재교육에 대한 교육투자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은 이제 국가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더 이상 방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더구나 그 많은 교육투자비용의 효율성에 관한 점검은 그동안 간과되어 온 부분이다. 교육전문가들의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도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정책의 문제점들을 고칠 수 없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생산자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소비자중심의 경제구조로 이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중심의 사고로 교육문제에 재접근하는 것이 시급하다.<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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