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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이야기/고정수 조각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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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이야기/고정수 조각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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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미국에서 개인전을 가졌을 때의 일이다. 전시기간 중 화랑여주인이 집으로 초대했다. 저녁식사 후 환담을 나누는 동안 그는 서너권의 가족앨범을 보여주었다. 가족은 남편과 아들 하나로 단출했다. 앨범을 뒤적이다가 한 앨범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벌거벗은 몸이 한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일종의 출산앨범의 성격을 띤 내용으로 임신초기부터 점점 배가 불러오는 알몸과 병원에서 분만할 때까지 적나라한 과정을 남편이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아무런 부끄러움없이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처음에는 용기를 느꼈지만 곧 용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나 겪는 삶의 한 단면일 뿐이었다. 그 감동스런 사진들을 보고 난 후 나는 그의 남편이 사진작가가 아니면 특별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었지만 알고보니 평범한 변호사였다.

아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닌 그 앨범은 보통사람의 육아앨범과는 사뭇 다른 것이겠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누구든 실천할 수 있다. 자신의 실체인 몸의 변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면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다.

얼마전 미스코리아 서울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출전자들과 인터뷰를 했을 때 취미가 무엇이냐는 나의 지극히 일상적인 질문에 한 후보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너무도 솔직한 그 후보에게 넉넉한 점수를 주고 역시 신세대는 무언가 다르고 자기 의사전달을 하는데 있어 주저하지 않고 확실한 표현을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카메라 앞에 서면 내 생각과 신조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성적인 대상물이 아니라 당당한 내 삶의 주체가 된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남성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라고 일갈한 세계적 누드모델 이승희의 당찬 말은 누드가 결코 포르노적 성격만이 아님을 시사해준다.

누드란 바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진솔한 모습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누드가 단지 관능적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으로만 충족되었다면 동서고금을 통해 그토록 많은 미술가들의 표현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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