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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논리를 초월하나/박성래 한국외국어대 부총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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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논리를 초월하나/박성래 한국외국어대 부총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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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뭐니뭐니 해도 우선 논리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서양에서 과학이 크게 발달하게 된 원인을 설명하면서 그리스 이래 서양 사람들이 발달시켜 온 「논리적 사고」가 그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고 지적한 일이 있다. 그는 또 실험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증명해 보려는 태도가 서양과학 발달의 또 한가지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논리적 사고」와 「실험 정신」. 이 둘을 근대과학의 두 기둥으로 보는 견해라 하겠다.내 걱정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지금 우리는 세계 선진국을 따라 잡기 위해 과학기술 수준을 선진국의 그것에 근접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바로 이런 논리적 사고와 실험정신이 물씬한 그런 구조로 만들지 않고서는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고민거리라는 말이다.

「논리적 사고」의 부족은 이미 우리 사이에서도 널리 인정된 일이다. 오죽하면 그런 뜻도 포함해 대학 입시에서 논술고사까지 시작했을까. 우리의 논리적 사고 수준이 낙제라는 것은 요즘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요즘 정치판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말싸움 내용만 봐도 우리의 논리적 사고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소위 『대가성 없다』는 떡값 이야기다. 나는 지난 「스승의 날」에 대학원 학생들에게서 넥타이 한 개를 선물로 받았다. 21년 교수생활 동안 내가 받은 선물의 양은 1년에 평균 10만원을 약간 넘어 설 것으로 보인다. 축의금이나 조위금을 빼고는 내가 남에게 선물하는 법이 없으니, 다른 곳에서 오는 선물이 있을 이치가 없다. 설날 대학원 학생들이 사과 한 상자(진짜 사과만 들어 있었다!)를 들고 오고, 스승의 날에 넥타이 한 개를 가져오는 정도이다.

사람에 따라 선물의 양은 나 보다는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나처럼 학교 안에서 뱅뱅 도는 사람들보다는 사회 활동이 더 많은 대다수의 공직자 사업가 회사원들의 선물의 양이 많아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선물을 교환해야 하는 횟수가 많을 터이니, 당연히 그 총액은 1년에 100만원대를 넘어 갈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1회의 「떡값」이 5,000만원을 오르내리는데, 그것을 「대가성 없는 선물」이라느니 「법 조문에 없다」느니 하면서 기소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런 현실을 이해할 사람은 한국인 빼고는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위 대선자금만 해도 그렇다. 얼마를 썼는지 자료가 없어서 밝힐 수 없다고 나자빠지는 태도도 논리적이지 못하고, 여당에게는 밝히라면서 자기 먼저 밝히고 나서는 야당이 없는 이치도 초논리적이다. 용이 모두 몇 마리인지 모르지만, 그 많은 용들이 하루 하루 쓰고 다니는 돈이 그들 사유재산에서 염출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도 어디서 얼마를 얻어 어떻게 쓰고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 요즘 세태도 논리를 초월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아무리 머리를 짜 보아도 이런 이유 저런 까닭으로 어차피 대통령과는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후보라고 나서는 이치도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돈도 벌고 정치적 입장도 높일 수 있어서 그런다는 것이야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러하면 돈이 벌리는 이치를 국민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정치가와 언론의 무책임도 논리적이지 못하다.

『의사가 국회의원 보다 못할 것이 무엇이냐』고 항의한 의사가 있었다. 지극히 논리적 타당성을 갖는 말이건만, 『뭘 모르는구나』하고 딱하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실례의 말이지만, 한국의 의사가 몇 천만원 짜리 떡값을 받고 온전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대학교수가 천만원대의 선물을 받는 일이란 숫제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런 단순 비교만으로도 우리는 당장 의사나 교수는 국회의원만 못한 줄을 깨우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며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여러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이란 바로 논리적 사고를 뿌리로 하여 성장하는 나무와 같다. 그러니 과학이 발달하려면 사회 전반이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구조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논리적이지 못한 초논리는 바로 비리 그것이다. 그런 비리가 버젓이 횡행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과학기술이 제대로 뿌리내리고 발달할 수 있단 말인가. 『의사가 국회의원 보다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항의가 나올 수 있는 동안, 한국에서 과학기술이 제대로 뿌리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 걱정이다.<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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