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이모가 병아리 두마리를 들고 놀러왔다. 아파트에 갇혀있는 병아리가 가엾다고 주택으로 나들이를 왔다. 마당에 풀어놓자 얼마나 잘 뛰어다니는지 눈으로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일곱살짜리 둘째가 주저하면서 병아리를 만져보았다. 『아이, 징그러워』 한 줌에 쥐일것 같은 솜털속에 뼈가 잡히는 느낌.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에게는 기묘한 감촉이리라. 그래도 자꾸만 만지고 싶어했다.동네에 들고양이가 많은 것을 걱정하면서도 병아리를 마당에 두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는데 둘째가 달려와 『고양이가 병아리 죽였어』하고 소리친다. 창밖으로 보니 줄무늬 들고양이 옆에 병아리가 누워 있었다. 잘 해주려던 것이 참혹한 죽음으로 이끌었다니. 죄책감이 계속 남았다. 아이들은 들고양이를 잡겠다고 허방을 팠다. 병아리 이야기를 오래 했다.
요즘 전자애완동물이 인기를 끌고있다. 손바닥만한 오락기 안에 들어있는 이 애완동물은 먹이를 주고 돌봐주면 잘 자라고 소홀히 하면 죽어버린단다. 물론 모든 일이 단추 하나로 해결된다.
갑자기 나타나는 들고양이 같은 복잡한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촉을 느낀다거나 배설물에서 나는 냄새, 여름이면 북실북실한 개털이 다 빠져서 날리는, 오감이 총동원되는 일이 전자애완동물 키우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 뒤만 좇아다니던 병아리가 주인 발에 밟혀죽거나 새끼를 낳던 염소가 생쥐를 보고 놀라 새끼를 눌러죽이는 그런 아이러니도 없다. 쥐약 먹은 고양이가 동물병원으로 가던 길에 죽어서 팔에 안긴 채 늘어지던 그런 처절한 기억과도 거리가 있다. 진짜 삶과는 멀고도 먼 곳에 전자애완동물은 자리잡고 있다.
2차 대전때 원자폭탄을 투하한 군인은 통념과는 달리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단추 하나를 눌렀을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이제 전쟁중도 아니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무감각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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